“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국내 병원들은 여러가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대응 방법을 내놓으며 ‘환자 안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전 문제는 감염병 대응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병원이 지향하는 목표가 돼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이 되는 것. 미래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에 대한 ‘신뢰’다.”
박종훈 고려대 안암병원장(57)은 5일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이라며 “환자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병원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대 의대를 나온 박 원장은 정형외과에서 골종양 수술을 주로 한다. 2018년 취임한 그는 무수혈센터를 개소, 연구중심병원으로 도약 등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연임에 성공했다.
박 원장은 ‘신뢰’와 ‘환자 중심 병원’을 연신 강조했다. △가장 안전한 병원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병원 △연구 분야 집중투자 △함께하는 즐거운 병원 등 중점 과제를 실현해 국민과 환자에게 신뢰받는 안전한 병원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박 원장의 이 같은 병원 운영 방향으로 고려대안암병원은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 4차 인증에 성공했다. JCI는 1994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기구다. 세계 각국 의료기관의 안전도 및 의료 서비스 질을 평가한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하기까지 겪는 모든 과정을 평가해 안전하고 진료 수준이 높은 의료기관에만 인증을 부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박 원장은 “각 시대별로 국민이 희망했던 병원의 모습이 있었다”며 “지금 시대에선 ‘의료 안전’이 환자가 원하는 병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종 코로나 대응 문제도 그렇다. 결국 바이러스는 사그라든다. 메르스 치료법을 우린 아직 모른다.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것은 치료를 잘 해서가 아니라 메르스가 저절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도 물러날 것이다. 다만 물러나는 동안 피해를 최소화 해 ‘환자 안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병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종훈 고려대 안암병원장과 일문일답.
- ‘의료 안전’을 목표로 삼는 이유는?
“우리나라 의료계는 100년 정도 역사를 지닌다.
1970년대까지 국내 의료계는 아프리카 수준과 비슷할 만큼 척박했다. 병에 걸리면 환자가 어처구니없는 일로 죽었다. 그때는 경쟁도 없었다. 국민이 병원을 선택할 정도로 다양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갖춘 곳은)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의사로 활동했던 선교병원과 정부 지원을 받는 병원이 다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내 의료계가 급성장했다. 국민의 의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대학병원은 ‘중병이 생기면 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병원에 ‘기업적 마인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첨단장비, 대규모 시설 등으로 무장한 대형병원이 나타나면서, 환자들이 그곳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역사와 전통보단 장비와 시설 등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의과대학 병원들이 규모의 경쟁 늪에 빠졌다.
그리고 2000년대엔 병원에 서비스 개념이 도입됐다. 이때부터 이른바 빅5 병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좋은 일인가’ 본다면, 환자의 관점에서 이런 패턴이 바람직하다면 계속 갈 것이며, 바람직하지 않으면 뒤집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국의 의료 수준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의료 안전이 후진국 수준이란 점이다. 안전과 기술이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기술만 성장한 것이다.
선진국 의료제도를 보면 끊임없이 ‘확인 작업’을 진행한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해당 환자가 맞는지, 진단명이 확실한지, 수술명이 틀리지 않았는지. 이 세가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까다롭다. 그런데 이는 인력을 많이 쓸 수 있고 환자가 적으면 가능한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병원에선 박리다매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여기서 확인절차를 도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기란 어렵다. 직원들이 번아웃된다.
하지만 이젠 국민들이 의료 안전을 원한다. 정부 역시 이 점을 인지해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한다. 어떤 수술을 잘한다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 아니다. 기본적인 시스템이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느냐가 중요한 평가 기준인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의료는 ‘신뢰’라 할 수 있다.”
- 병원장 취임 후 가장 공들인 사업은?
“무수혈센터를 개소한 일이다.
무수혈센터 개소는 고대병원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전국 약 20개 병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고대병원의 무수혈센터가 의미를 갖는 것은 기존 무수혈센터가 모두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시는 분들을 위한 센터에 국한했다면, (우리는) 그분들도 대상으로 하지만 일반 환자들을 대상으로 최소수혈 치료를 적용하려는 목적이 있다. 최소수혈은 불필요한 수혈을 줄이는 치료법이다.
이는 지난 1세기 동안 인류가 무분별하게 시행했던 수혈치료가 환자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현재는 최소의 수혈로도 대부분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는 고령화 사회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혈액이 더욱 부족해 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 수혈을 줄이는 것이 필요한 선택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정부차원에서 도입하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연임 동안에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소수혈 외과병원, 최소수혈 교육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연임 후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인가?
“앞으로 2년간 중증질환 중심 병원으로 거듭나는 데 힘쓸 것이다. 중증질환 중심으로 보겠다는 건 병원 전체의 시스템을 다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는 중증환자 위주의 진료 과정을 확립하고 정밀한 검사, 정확한 진단, 최적의 치료를 통해 상급종합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어느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하는 어려운 질병과 수술을 맡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3차를 넘어서 4차 의료기관, 최종의료기관으로서의 역량과 시스템을 마련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증환자를 과감하게 협력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시스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의 핵심은 환자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결국 우리 의료진의 적극적인 노력이 바탕이 돼야 하는 셈이다. 이를 독려하는 것이 병원장으로서 역할이라 생각한다.
또 연구중심병원으로서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연구중심병원 3차 재지정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국가전략 프로젝트 정밀 의료사업단을 통해 암 진단 및 치료법, 정밀의료병원정보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맹활약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진단과 치료에 그치지 않고, 질병 예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장 프로필
△1965년 출생
△1989년 고려대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 취득
△2000년 울산대대학원 생화학석사‧박사
△2008년~2010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비상임이사
△2009년~201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비상임이사
△2009년~2011년, 2017년~현재 한국원자력의학원 이사
△2012년~2015년 보훈의료전문위원회위원장
△2014년~현재 국방부 정공사망심의 위원회 위원
△2018년~현재 고려대 안암병원장
△2020년~현재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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