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코로나가 바꾼 선거공식…정권심판론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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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서울시립대 교수
입력 2020-04-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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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다음 날인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에서 주민센터 직원들이 인근에 붙은 선거벽보를 제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마디로 정의하면 코로나 총선이었다.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대선 2, 3년차에 치르는 총선은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어 여당이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미증유의 코로나가 폭발하면서 정권심판론이 실종된 선거가 돼버렸다.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 시대의 선거공식이 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시대에 통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가 갑자기 폭증하면서 한국은 확진자 수에서 중국 다음으로 세계 2위가 됐다. 국민 모두 공포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빠르게 개발한 진단키트로 신천지 신도를 전수검사하고 확진자 전원의 격리 치료와 접촉자 전원의 자가 격리를 병행하는 전략이 성공했다. 드라이브 스루, 워킹 스루로 확진자 수가 급증했지만 코로나의 불길을 잡는 데 성공하자 세계가 찬사를 보냈다.

보수 쪽에서는 좌파정권이 중국을 막지 않아 코로나가 악화됐다고 연일 공세를 폈다. 정확한 역학조사가 진행돼봐야 알겠지만 코로나를 들여온 것은 우한에서 활동한 신천지의 한국 신도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대구 본부 예배와 경북 청도 장례식장에 참석하면서 코로나를 확산시킨 것이다. 의료인과 국민이 잘한 것이지만 정부도 잘했음을 이번 총선이 인정한 것이다.

코로나가 잡혀가자 보수 쪽은 코로나로 쏠린 시선을 경제실정 쪽으로 돌려보려고 코로나 착시(錯視)를 거론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착시가 아니었다. 코로나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다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후견지명(後見之明)이지만 야당이 코로나를 쟁점화한 것은 실패한 전략이었다.

사실 경제는 AC 시대의 큰 걱정거리이고 세계경제가 다 무너졌는데 한국만 혼자 잘나가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 정부가 경제살리기에서 실패하고 이념형 경제정책을 계속 고집하다가 경제를 그르친다면 그랜드 슬램의 흥분이 2년 뒤 대선에서는 비참한 패배로 뒤바뀔 것이다.

악명 높은 여론조사가 족집게 된 이유

역대 총선여론조사는 부정확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20대 총선에서는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새누리당(통합당 전신)의 과반을 예측했으나 선거 결과 제1당이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거 전 여론 조사가 족집게처럼 총선 결과를 맞혔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종로 선거구의 최종 결과는 민주당 이낙연 58.3%, 통합당 황교안 39.9%였다. 선거 일주일 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여론조사기관 피플네트워크(이낙연 51.0%, 황교안 39.0%)와 조원씨앤아이(민주당 52.2%, 황교안 37.1%)가 비슷하게 예측했다.

3개 통신사가 선거여론조사기관에 표본수의 30배수를 공급하는 안심번호 제도가 정착하면서 정확도를 높였다. 050으로 시작되는 안심번호는 이용자의 성별, 연령, 거주지역만 알 수 있다. 중앙선관위가 선거여론조사의 표본 수를 선거구당 500명 이상으로 하고 응답률이 낮은 20·30대 유권자의 편입을 일정 비율 의무화면서 부정확성이 감소했다.

젊은 층이 사전투표에 많이 참여한 점도 진보 쪽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나는 사전투표 첫날 오전 9시경 투표소에 갔는데, 젊은이들이 많이 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 실제로 선거의 승패가 사전투표함에서 뒤집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80석을 호언했다가 여야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이런 여론조사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출구조사는 사전투표(26%)가 반영되지 않아 개표결과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

부동산 세금폭탄에 비강남 박수

정부가 부동산 세금폭탄으로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분당의 집값을 잡는 데 성공한 것도 크게 도움을 주었다. 강남의 고가주택을 핀셋 규제하는 바람에 민주당은 강남3구에서 7대 1로 참패했다. 강남 3구의 연장선상인 용산 분당에서도 졌다. 노무현 정부는 세금폭탄을 때리고도 집값 잡는 데 실패하고 선거에서도 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욕을 먹으면서도 집값을 잡았다. 강남3구를 빼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부동산 부자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정책에 조용한 지지를 보낸 것이다.

운동장의 기울기 거꾸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이념지형의 운동장이 과거와는 거꾸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DJ 이후 모든 선거 때마다 영남 인구가 많고 전쟁을 겪은 보수층이 두꺼워 민주당 계열의 정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웠다. 

그러나 진보 우위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제 뉴노멀이 됐다.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수도권에서 아버지, 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영호남이지만 수도권에서 태어난 2,3세는 오히려 지역의식보다는 계층의식, 세대의식이 강한 세대로 자라났다. 강남보다는 비강남이 많고, 가진 자보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젊은이가 많다.

이번 선거에서도 ‘서민동통(서쪽 민주, 동쪽 통합)'의 현상이 심해졌지만 지역대결은 ‘경전선(경북·전북 선)' 이남으로 국한됐다. 영남에서 민주당의 의석수가 줄었지만 득표율이 부산 43.5%, 울산 38.6%로, 경남 37.1%로 높아진 것도 특기할 만하다.

통합당은 이념 지형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전광훈 목사 같은 세력과 일베, 일부 극단적인 매체나 유튜버들에게 끌려다니며 중도층을 밀어냈다. 정치양극화가 언론양극화로 이어지면서 일부 인터넷 매체와 유튜버들은 후원금과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도 극단의 논리를 쏟아낸다. 차명진 전 의원의 ‘쓰리X’은 경박한 기류의 정점을 찍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의 잔불도 5월이면 꺼질 것이다. 이제 AC 세상에 온갖 새로운 변화가 몰려오면서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올라타는 정당, 국민, 나라가 승기를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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