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천재 소년' 송유근의 근황이 화제가 되고 있다.
대전고법 행정2부(신동헌 부장판사)는 오늘(19일) 송 씨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을 상대로 낸 제적처분 취소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항소를 기각했다. 송 씨는 12살이던 2009년 3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한국천문연구원 캠퍼스 천문우주과학 전공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입학했으나, 논문 표절 논란으로 지도교수가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고 재학 연한인 8년 안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국 제적됐다.
U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면 재학 기간 중 박사학위 청구논문 심사를 받고, 관련 논문 1편을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급 저널에 발표해야 한다. 이에 대해 송 씨는 "지도교수 해임으로 UST에서 실제로 교육받은 기간은 7년에 불과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대전지법 행정2부는 "논문 표절 논란에 송 씨 본인의 책임도 있고, 피고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재학 연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며 기각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원심은 정당하고 원고 주장에 이유가 없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을 내렸다. 결국 그는 12살에 독학사로 취득한 전자계산학 학사 학위만을 손에 쥔 채 군에 입대했다.
자녀 교육, 특히 '영재'로 만드는 방법론에 있어 송유근은 여러 말들이 오가는 인물이었다. 그의 만개하지 못한 천재성을 두고 누군가는 부모를 탓하며, 또 누군가는 표절을 부추긴 지도 교수를 비난한다. 더 나아가 한국 교육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1997년생으로 6세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대학 수준의 미적분 문제를 풀며 천재 소년이란 칭호를 얻은 그는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반년만에 마치고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8살에 최연소로 인하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2년만에 대학을 그만둔다. 이후 12살에 UST 천문우주과학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했으나, 제출한 논문이 표절 의혹으로 철회되면서 8년 안에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고 결국 제적 처분 당했다. 그는 블랙홀 주제의 논문에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등 '기본 소양'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최종심사에서 불합격됐다고 UST측 관계자는 전했다.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날개를 달아준 것은 훌륭했다. 하지만 송유근의 공부는 자기주도학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부모의 개입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어린 송유근을 언론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시켰고, 각종 강의나 저술활동의 간판 역할로 아들을 내세웠다. 어떻게든 사회로부터 조명을 받아 더 많은 기회를 잡으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최연소 기록'을 연신 달성한 것으로 본다면 결과적으로 이 계산은 대부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대신 송유근은 어린이다운 어린이로 성장할 기회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에게 학창시절 친구가 있을까. 일찍 들어간 대학교에서 동기들이 우정을 다지는 술자리에 그가 앉을 자리가 있었을까. 마음껏 놀면서 엉뚱한 사고도 쳐보고, 전공과는 무관한 책을 읽으며 돈이 안되는 상상에 빠질 시간이 있었을까. 나이와 진학 속도만 놓고 보면 성공한 삶이 될 수는 있으나, 적어도 이를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UST에서 만난 석박사학위 지도 교수는 어땠을까. 후학을 지도하며 육성해야 하는 그에겐 '논문'만이 성과를 증명할 수단이었고, 가뜩이나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는 송유근의 모습은 스승의 조바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제자의 논문을 지도한 결과 지도교수는 파면됐고, 송유근의 연구는 중단됐다. 논문은 오랜 학업을 통해 축적된 지식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문제를 잘 푸는 것과는 별개의 '능력'이 필요하다. 연구하고, 동료와 토론하고, 오차를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난 천재성만으로는 얻기 어렵다. 송유근의 지난 발자취는 주어진 문제를 풀고, 또 풀며 똑똑함을 입증하는 것 외엔 모든 것이 '평범한 수준도 못 되는' 유년기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성적과 성과를 나누어 정의해 본다면 송유근의 천재성은 성적으로만 남은 셈이다.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를 주행해 본 이라면 알 것이다. 도로를 벗어나 갓길로 달린 차가 반드시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진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함께 달리는 다른 차들과의 간격과 속도를 가늠하지 못한 채 엑셀만 밟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송유근의 인생에는 '기다려주는 어른'이 없었다. '실패를 용납하는 어른'도 없었다. 부모와 스승 중 어느 쪽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삶과 고민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봐주는 친구도 없었다. 오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그의 이름이 비단 세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소비재가 되기보단, 어째서 대한민국이 영재들의 무덤이란 비난을 받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영재들이 왜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리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행스럽게도, 영재의 몰락이라 일축하기엔 송유근의 나이는 여전히 젊다. 그는 전역 후 박사학위에 재도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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