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라는 순우리말 동사는 정말 중요한 명사와 이어지는 말이다. 우리 생명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의식주에 다 붙는다.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는다. ‘정성을 다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웃음, 미소도 그렇다. 이렇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움직임을 가리킬 때 ‘짓다’를 쓴다. (‘짖다’는 개가 내는 소리에 붙인다.)
▶이름에도 붙는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제목의 책, 작명소 광고를 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에는 작명이라는 말은 잘 안쓰고 브랜드, 회사 명칭을 바꾸거나 새로 만드는 일을 ‘네이밍’(naming)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단어는 메이킹(making)에 비해 뭔가 노력을 더하는 느낌을 준다.
▶여러가지 상품 중 자동차는 특히 네이밍이 이미지, 차 판매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중형 세단의 베스트셀러인 현대자동차 ‘쏘나타’(sonata)는 처음 원래 뜻(서양 고전음악 기악곡 형식)인 소나타로 시작했다. 하지만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이 나오자 공식 차명을 바꾼 것으로 기억한다. 또 지금은 단종됐지만 기아차 아벨라(avella)는 ‘처녀들이 타면 애 밸라’라는 시대착오적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아름다운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차들도 적지 않았다. 새한자동차가 내놓은 ‘맵시’, 대우자동차 ‘맵시나’(새한차 맵시의 두 번째 모델-가나다 중 나-이라는 뜻), ‘누비라’가 대표적이다. 쌍용자동차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안 나오는 국내 최초 SUV ‘무쏘’는 물소의 순우리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차명은 코란도다. ‘코리안 캔 두’(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의 줄임말이다.
현대차그룹은 내부적으로 희망과 고민이 겹쳐 있다고 한다. 애플카 사업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을 거라는 희망, 반면 애플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고민이다.
▶넘어야 할 높은 산이 적지 않겠지만 현대차그룹이 애플과 협상을 할 때 이름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다. 우려를 희망으로 바꾸는 포인트가 바로 네이밍이다. 하청업체는 즉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생산 회사다. 이름에 대한 권한이 없다. 그런데 OBM(Original Brand Manufacturing)방식은 제조자가 제품 개발과 생산 뿐 아니라 브랜딩과 마케팅까지 참여하는 방식이다.
기아는 올 들어 회사이름을 바꿨다.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뺐다. 로고도 새로 바꿨다. 단순히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기아는 2009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생산공장을 가동하며 수 만개의 미국 일자리를 만들었다. 애플과 함께 공동으로 차를 생산하면 미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애플을 상대로 협상할 때 네이밍까지도 고려했으면 한다. 미국에선 현대차를 휸다이라고 부른다. 현대차가 직접 생산할 가능성은 적어 현대+애플=휸다이플(HYUNDAIPPLE), 또는 휸다이애플(HYUNDAIAPPLE)은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기아+애플=키애플(KIAPPLE) 어떤가. 애플과 상대할 때 이름을 쉽게 양보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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