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하사탕'을 시작으로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가족의 탄생' '스파이' '자유의 언덕' '배심원들' '메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오가며 영화 팬들과 평단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 문소리(47)가 연기를 넘어 영화 연출 그리고 영화 제작까지 발을 디뎠다.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통해 영화감독으로서 인정받은 그는 영화 '세자매'의 주연 배우이자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며 제작자로 활약했다.
이승원 감독이 쓴 '세자매'의 시나리오는 문소리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어떻게든 영화가 세상으로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의 주연부터 제작까지 참여하게 됐다.
"사실 처음 작품 제안을 받으면 '투자사가 어디야?' '언제부터 촬영한대?' '영화 예산이 어느 정도래?' 등을 물어보잖아요. 하지만 '세자매'는 아무것도 형성되지 않은 초고 단계에서 만났고 단숨에 반해버려서 하겠다고 했어요."
문소리는 프로듀서로서 투자자 미팅부터 스태프를 꾸리는 과정, 시나리오 디벨롭(develop) 등을 함께했고 주연배우로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그야말로 카메라 안팎을 넘나들며 활약한 셈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걸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며 마음과 몸, 머리, 노동을 보탰죠.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책임감이 생기는 과정이었을까요? 그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간 많은 영화를 찍어왔지만, '세자매'를 바라보는 문소리의 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니 영화의 완성도가 더욱 신경 쓰였다. 기술 시사회를 진행하던 날도 영화 색감이며 사운드, 믹싱 등을 신경 쓰느라 정작 본인 연기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이 장면은 사운드가 잘 안 들리네, 여긴 톤이 너무 세지 않나…. 날을 세우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김)선영이랑, (장)윤주가 끌어안고 우는 거예요. 하하하. '아이, 창피하게 자기 영화를 보고 우니?' 놀렸어요. 사람이 한 치 앞도 모르고 말이에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전당에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곤 엉엉 울어버렸어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동생들이 '저 언니는 우리더러 뭐라고 하더니, 자기가 더 운다'라고 하더라고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세 자매의 삶이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더라고요."
문소리가 맡은 역할은 둘째 미연이다. 신도시 자가 아파트, 잘나가는 교수 남편과 말 잘 듣는 아이들까지 겉보기에 남부러운 것이 없는 인물. 독실한 믿음을 가진 성가대 지휘자로 나무랄 데 없는 가정주부의 면모를 뽐내지만, 그는 순전히 미연의 의지로 만들어진 모습이다. 그간 쌓인 고통과 상처는 내면에 숨긴 채 살아온 미연은 쌓아온 것들이 흔들리며 폭발하고 만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마음이 망가진 세 자매. 모든 일을 제 탓으로 돌리는 첫째 희숙(김선영 분)과 외면하고 종교에 매달린 둘째 미연과 기행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막내 미옥(장윤주 분)까지. 인물들의 삶은 너무도 고단하다. 문소리는 영화 속 미연이 자신과 닮아있어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저와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그 마음이 저와 같은 데가 있어요. 허술하고 잘못 할 수도 있는데 '아, 이렇게 돼버렸네. 미안합니다' 하는 식을 못 해요. 미연도 그렇잖아요. 하지만 그 모습이 제 성격 중 좋아하는 부분은 아니에요. (미연이) 왜 그러는지 알겠는데, 알아서 더 짜증 나는 마음도 있었죠. 한 번에 쉽게 마음이 가는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문소리는 종교에 집착하는 미연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실제로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지휘를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회 문화를 잘 몰라서 직접 가보고 경험해보려고 했죠. 짧은 시간 배우긴 힘들었지만 (장)윤주의 지인을 만나 지휘하는 방법도 배워봤고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한 부분들이 있죠."
문소리는 영화와 달리 실제 남동생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우리 남동생은 고맙게도 속 썩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저를 보살펴주었죠. 제가 매니저 없이 5년간 일했는데 때마다 데려다주고, 어디든 데리러 와주었죠. 부모님은 동생이 남자라는 이유로 더 많이 혼내시기도 했어요. 좋은 게 있으면 딸 먼저 주는 집이었거든요. 그런 게 (동생) 마음에 남아있지 않을까. 미안하기도 하죠."
이승원 감독은 영화 '세자매'를 통해, 부모님의 진정한 '사과'가 아이들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가정 폭력 속에서 자라난 '세자매'가 외면하던 상처를 마주하고 폭발하며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배우들끼리도 마지막 장면을 찍으며 '이 부모와 딸들은 어떻게 살게 될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꼭 부모와 자식이 아니더라도 세대 간의 갈등은 있고 그것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요. 세 자매와 부모님도 결국 고통을 이해하며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아픔을 공감하는 자매가 있으니 조금은 낫지 않을까 하는 거죠. 우리에게 남은 숙제기도 하고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내 가족을 이해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부모이고 자식이며 형제였나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