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규모 역대 최대인데… 나빠진 ‘부채의 질’
23일 한국은행 및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기업부채 합계는 3167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가계부채 규모는 1765조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5% 늘었으며, 기업대출의 경우 같은 기간 14.1% 급증한 1402조2000억원을 기록했다.문제는 전 금융권의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난 부채의 질이 지속 나빠져 부실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1.5%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1.4%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는 버는 돈에 비해 대출받은 돈이 많다는 뜻으로, 높을수록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기업대출 역시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는 기업 비중이 지난해 말 15.3%를 기록해 반년 새 3%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현재 금융당국이 중소기업에 대해 대출만기 연장, 이자상환 유예와 같은 금융지원 조치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의 실제 채무상환능력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새로 도입한 ‘금융취약성지수(FVI)’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FVI는 금융불균형 정도와 금융기관의 복원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내외 충격에 대한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측정하는 지수다. 올 1분기 FVI는 58.9를 기록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73.6)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FVI가 상승했다는 건 금융기관의 복원력이 약화됐다는 뜻으로, 대내외 충격 발생시 금융·경제에 초래할 부정적 영향의 크기가 커졌다는 의미다.
◆전 금융기관으로 부실 리스크 번지나
정부의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 등이 종료되고 본격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부채 리스크가 전 금융기관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빚을 빚으로 돌려막는 ‘다중채무자’가 지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한은 역시 금리상승과 같은 대내외 충격이 발생하면 취약부문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6~2019년 금리상승기 당시 취약 대출자의 연체율은 2%포인트 높아졌는데, 이는 비취약 대출자(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빚으로 빚 갚는 악순환의 ‘늪’ 우려 목소리도
이러한 상황은 취약부문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대출을 상환하고 있는 차주들에게도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규모가 역대 최대치로 늘어난 상황에서 부실 리스크가 확대되면,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정상적으로 회수하지 못하는 대출이 많아져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금융회사들이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에 따라 현재 대출증가율을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금융사들은 수익성 관리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정상 차주들의 가산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는 취약부문 부실위험에 따른 금융회사 부실 리스크가 결국, 정상 차주들의 채무상환부담까지 키워 일부 차주의 부실이 정상 차주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고 본격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취약 부문을 시작으로 금융사들의 가계부실이 현실화할 수 있다"며 "취약 차주의 부실이 금융회사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상황이 다시 정상 차주들의 채무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