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온도가 30도에 육박하던 29일 오후.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한 염색공장이 작업에 집중하는 생산직 외국인 근로자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사진=이나경 기자]
주 52시간제 전면 시행을 이틀 앞둔 29일, 기자가 찾은 반월시화산단 내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썰렁했다. “깡깡깡” 간간이 들리는 철제음만이 이곳이 수도권 최대 산업단지임을 실감케 했다. 몇몇 공장을 제외하곤 작업자들의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거리엔 화물차 행렬 대신 공장을 급매하거나 싼값에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띌 뿐이었다. 중소기업 경기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정부 통계와 달리, 코로나19와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이곳에서 대체인력 확보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명분은 사치였다.
산단 내 꽤 분주해 보이는 한 염색공장을 찾았다. 공장 내부에는 10명 남짓한 인원이 조업에 집중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업자 대다수는 외국인 근로자였다. 이곳은 100명이 넘는 직원을 보유하고 있어 주 52시간제 도입 전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내·외국인 근로자 수가 20~30% 급격히 줄며 주 52시간제 대응은 그림의 떡이었다.
수도권 최대 산단 중 하나인 반월산업단지가 코로나19와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29일 일감 감소로 가동시간이 줄며 산단 내 위치한 한 염색공장 내부가 한산한 모습을 띠고 있다. [사진=이나경 기자]
염색공장 대표 A씨는 “보다시피 외국인 노동자도 없어서, 주문량은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늘었지만 2교대가 아니고서는 납품일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코로나19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감당하기 힘든데, 주 52시간제까지 걸고넘어지면 회사를 운영하지 말라는 소리밖에 더 되냐. 열심히 일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낙인 찍히게 됐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염색업체 특성상 염색기를 24시간 내내 가동하며 2교대로 인력을 운용해야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납품일을 제때 못 맞추고 있다. 급한 대로 토요일 근무를 없애고 부서마다 업무시간을 조금씩 줄여 조율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대로 가면 7~9월 성수기엔 주문받은 물량을 생산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
A씨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매년 20~30% 줄다 최근에서야 주문 건수가 늘어 공장을 가동 중인데, 주 52시간제로 들어오는 주문도 맘 편히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에 대기업처럼 관련 제도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기 전에 정부가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에 대다수 의존하는 업계의 현실을 먼저 파악했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29일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내 도로변에 위치한 한 공장 외관에 '임대'라고 적힌 빛 바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근에서 마주한 근로자 B씨는 "근로자를 배려하고 처우개선을 위해 시행한다는 법이 오히려 일해서 돈 벌고 싶은 근로자를 막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사진=이나경 기자]
인근에 있는 50인 미만 염색공장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이곳에서 5년 가까이 일했다는 C씨는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도 업무시간이 많이 줄어 월급이 30~40% 깎였다. 저녁시간에는 대리운전이라도 나가야 할 판”이라며 “이미 같이 일한 친구 대부분이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공단을 떠난 상태”라고 말했다.
휴대폰 부품을 생산하는 한 제조업체 근로자 D씨는 "주 52시간제는 애초에 중소 제조업에 적용할 수 없는 제도"라고 선을 그었다. D씨는 “사람도, 일감도 줄어 지금 당장 회사를 계속 운영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무슨 주 52시간제 준비냐”며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워라밸보다 돈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임에도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당장 내일 모레 제도가 적용되면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일하려는 근로자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52시간제는 2018년 7월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적용, 지난해 1월 50~299인 사업장에 도입된 데 이어 올해 7월 5~49인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됐다. 고용촉진과 워라밸을 위해 정부가 추진한 정책이지만,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가뜩이나 심각한 중소 제조업계의 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추가고용이나 수당 지급을 확대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유연 근로시간제와 특별 연장근로제 등 제도적 개선과 함께 산업 특수성을 감안한 유연한 운영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29일 오후 4시가 지나자 산단 내 작업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산단 곳곳에는 빈 공장을 의미하는 '현위치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이나경 기자]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 본부장은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에 맞추려면 그에 맞는 근무형태 등을 개편하고,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인건비 부담 등의 문제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며 “인력난에 '인력을 구하면 지원금을 준다'는 실효성 없는 정책 대신 지금이라도 중소기업에 계도기간을 최소 1년을 부여해주고, 30인 미만 기업에 추가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제도를 50인 이상까지 확대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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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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