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여러 정부부처의 인터넷·정보보호 정책과 사업을 지원해야 하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책임이 무거워졌다.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연구자 출신으로 올해 초 취임한 이원태 KISA 원장이 사이버위협 대응과 정보보호산업 진흥이 국가경제와 국민 후생에 끼칠 영향을 데이터로 입증해, '수요자 중심'의 정책개발과 실행에 기여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5월 단행한 첫 조직개편의 의미는.
"KISA가 지금까지 단순 위탁사업 기관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민·관의 경계가 사라진 사이버위협 환경이나 정보보호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정책을 발굴·기획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이 미흡했다. 정책 선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사업실행 위주의 공급자 관점을 벗어나, 수요자인 국가·정부부처·국민 중심의 정책개발을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존 미래정책연구실의 구성과 업무범위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여러 유관 부처 업무에 대응하는 미래전략팀, 정책대응팀, 정책분석팀, 법제연구팀으로 확대 개편해 법제 개정이나 공론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뉴딜, K-사이버방역 등 정부정책 지원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강화할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외부의 ICT정책연구 성과가 실행되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이다. 정보보호 분야에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국민 이익·편리·복지 등이 함축된 국가정책 실행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 '디지털 안심국가 실현을 위한 중장기 전략', '2030 미래사회 변화 및 사이버위협 전망', '언택트 시대 대전환을 위한 정책연구', '정보주체의 권리 보장을 위한 이슈 대응방안' 등 다양한 연구과제를 수행 중이다. 특히 사이버침해·정보보호산업의 경제성과 효과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위협이 심각하고 위험하다고 강조하려면, 데이터를 근거로 입증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것이 앞으로 KISA의 몫이라 보고, 정책연구과제로 진행하고 있다. 연말께 정책연구결과를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취임 후 6개월 동안 느낀 점은.
"KISA가 과기정통부·개인정보위·방통위·행안부 등 2개 이상의 정부부처 정책사업을 지원하는, 대단히 복잡한 업무구조를 갖고 있다. 부처 간 균형점을 잘 찾아 집행하고 지원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또, 한 기관 안에 정보보호·개인정보보호라는 규제성격의 업무와 인터넷·블록체인·전자문서를 포함하는 정보보호 관련 산업활성화라는 진흥성격의 업무가 공존하고 있다. 외부 시선으로 둘의 균형을 맞춰 사업을 추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봤다. 들어와 보니 전문가인 구성원들이 잘 해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벌어진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사건처럼 개인정보 유출·침해가 수반되는 일에 요구되는 협업이 잘 작동한다고 봤다. 기관장으로선 어려운 업무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구성원의 전문성 강화, 미래 설계 등을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보게 됐다."
-민·관 사이버위협 대응 공조를 강조했다.
"KISA에 민간 정보보호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는 최일선 기관이란 책무가 있다. 현장 점검·탐지·대응·복구하는 것만큼, 피해 복구 시점을 앞당기고 피해가 더 번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게 정보공유의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본다. KISA가 3개 기관 통합 이후 12년간 많은 위협정보·데이터를 축적해 왔는데, 위협 발생시 그때그때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이 데이터를 잘 분석하고 활용하는 게 필연적이다. KISA의 인터넷침해대응센터(KISC)와 정부부처의 공조로 '사이버위협정보분석공유시스템(C-TAS) 2'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AI 기반으로 사이버위협정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체계를 만드는 중이다. 민간 사용자들이 우리 데이터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공유체계를 플랫폼처럼 만들어 운영할 생각이다."
-업무에 ICT정책연구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KISA에 오기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기관ICT 메가트렌드, 미래전략 이런 중장기 정책연구를 주로 수행했는데 이런 경험이 KISA의 정보보호, 디지털·사이버 보안 관련 여러 정책 수행 방향을 중장기 관점으로 재정립하고 미래 비전을 재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ICT정책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방향으로 KISA의 조직도 변화시키려고 한다. 또 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법(EU GDPR)이나 데이터 3법 개정 등 ICT정책환경 자체가 변화하고 있어, 인터넷 진흥과 정보보호 등 업무간의 조화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다. 양자 균형과 조화를 추구해 기관을 지속 발전시키려고 한다."
-주요 연구주제 중 기관 역할과 밀접한 게 있었나.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이란 게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ICT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발적으로 내재화, 내면화하려는 수용자로서의 태도를 뜻한다. 긍정적인 수용만이 아니라, 신기술을 접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 집단이나 신기술 수용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혁신 저항 집단' 등과의 갈등 조정까지 포함한다. 정보보호·개인정보보호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 수용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보완하느냐가 KISA의 중점 업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공급자 중심으로 결정되던 기술의 수용 과정이 일반 이용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취임 전 KISDI 지능정보사회정책센터 연구위원으로서 마지막 협업 연구로 '4차 산업혁명의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위한 국가전략 연구' 보고서에서도 다뤘다."
-KISA가 지역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그간 KISA 업무가 중앙부처 중심 사업에 편중돼 있었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으로서 당연히 주민 복지와 삶의 질 개선 등 측면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본다.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한 가지 아이디어는 KISA의 장점인 정보보호, 개인정보보호, 블록체인 등 새로운 ICT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수행 중인 업무를 지역사회 사업에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공사를 중심으로 나주를 포함한 광주·전남 지역 에너지밸리가 조성되고 있는데, 나주에 있는 KISA가 '안전한 에너지밸리'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KISA가 나주에서 정보보안 분야 일자리 창출과 인재양성 사업을 하고 있는데, 최근 착공한 한국에너지공대나 다른 지방이전 기관과 협업했으면 한다. 임기 내에는 이런 쪽으로 많이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주와 개인적 인연이 있나.
"직접적으로는 없다. 호남 지역에 여행하면서도 들른 적이 없어서 취임 첫날 나주 방문 자체가 처음이었다. 모친의 고향이 전남 구례여서 호남권에 친지들이 계시고, 처가도 전남 지역이라, 지역사회의 분위기·정서는 낯설지 않다. 서울과 나주를 오가는 교통편에 시간과 체력적인 부담이 있지만, 6개월간 음식이나 문화에는 금방 익숙해졌다. 짧은 기간에 오히려 '나주 사랑'이 각별해졌다. 여러 광주전남혁신도시 가운데 나주의 비전에 주목하고 있고,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앞으로 호남 전체 지역 혁신을 이끄는 리더 도시 기능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관 산업·언론계 종사자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은.
"국가적인 중요업무를 맡고 있고 복잡한 현안에 잘 대응하는 역량과 잠재력을 가진 것에 비해 KISA만의 브랜드파워가 약하다는 생각에 굉장히 아쉽다. 정책역량을 키워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해진 만큼,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적 가치도 창출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 같은 정보보호산업계 주체들과 교류하고 협력해 정보보호산업의 창업 활성화와 성장 지원, 경쟁력 강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 언론인들께는 KISA가 안전한 디지털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역할을 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과 연구결과를 설명할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 해킹관련 이슈가 많은데 필요 이상 자극적인 보도로 국민 불안이 커질까 우려스럽다. 가급적 팩트가 확인돼 신중한 보도가 이뤄지면 좋겠다."
◆이원태 KISA 원장은 어떤 사람?
이원태 KISA 원장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정치학 석·박사를 졸업하고 2007년부터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서 작년까지 10여년간 ICT 관련 정책을 연구해 온 정책전문가다. ICT 기반의 국가미래전략, 국가정보화전략, ICT인문사회 융합연구, 디지털사회정책, AI윤리 등 4차산업혁명 법제도, 이용자보호, 개인정보보호를 아우르는 ICT 분야 전반의 정책연구를 수행했다. <4차산업혁명과 한국의 미래전략>, <인공지능의 규범이슈와 정책적 시사점>, <재난대응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ICT의 역할 및 정책적 시사점> 등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2017년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부회장, 2018년 한국인터넷윤리학회 부회장, 2019년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 2020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제도혁신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민·관·학계 ICT분야 연구자들의 협력 네트워크 형성에 기여했다. 2019년에는 지능정보사회 규범의 선도적 연구 및 정책공론화 과정에 적극 참여해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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