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압박하는 새로운 전략적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안정에 협력하는 대가로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원설 등과 관련한 미국의 대중 공세 완화를 주문하고 나섰다.
다만 중국이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또 미국이 중국의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손 내민 美에 "탈레반 정권 인정해야"
30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왕이(王毅)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아프간 정세와 관련해 전화 통화를 했다.
아프간 철군 시한을 이틀 앞둔 시점에 이뤄진 통화에서 블링컨 장관은 탈레반이 외국인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중국에 요구했다.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블링컨 장관은 또 "아프간 국민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아야 하며 아프간 영토는 테러 공격의 발원지가 되거나 테러주의의 피난처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철수 시한 이후에도 외국인이 안전하게 아프간을 빠져 나오거나, 아프간에서 추가 테러가 발생하지 않도록 탈레반을 압박하는 데 중국도 동참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에 대해 왕이 부장은 "아프간 국내 정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 만큼 각국은 탈레반과 접촉해야 한다"며 "특히 미국은 아프간의 새 정권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치안을 유지하며 재건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간 전쟁은 테러 세력 제거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꼬집은 뒤 "미국은 아프간 주권을 존중해야 하며 이중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보리의 역할에 대해서도 갈등 완화와 분쟁 재발 방지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미국과의 인식 차이를 드러낸 것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순순히 따를 의사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 지켜볼 것" 베팅 나선 中
관영 신화통신은 왕 부장과 블링컨 장관과의 통화에서 아프간 문제 외에 미·중 관계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전했다.
왕 부장은 "최근 중국과 미국은 아프간과 기후변화 등의 문제에 관해 소통하고 있다"며 "대결보다는 대화가, 충돌보다는 협력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어떻게 접촉을 이어갈지 고려할 것"이라며 "중·미 관계의 정상화를 바란다면 중국 공격에 몰입하거나 중국의 주권·안보·발전이익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왕 부장은 지난 16일 블링컨 장관과 통화할 때도 "미국은 한쪽에서 중국을 억압하고 정당한 권리를 해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중국의 지지와 협력을 기대한다"며 "국제 교류에 이런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이 아프간 안정과 재건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고 싶으면 대중 공세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셈이다.
전날 통화에서는 명시적인 요구가 더해졌다.
왕 부장은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코로나19의 중국 기원설을 주장한 데 대해 "미국 전 행정부가 남겨 놓은 정치적 짐"이라며 "빨리 내려놔야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밖에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을 테러 조직으로 완전히 규정할 것도 중국이 미국에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사안이다.
코로나19 기원과 신장웨이우얼 등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모양새다.
◆중국, 수세 탈출 여부는 미지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7~28일 열린 중앙민족공작회의에서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 강화를 지시하며 "민족 분열과 종교 극단 사상의 악영향을 일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의에 참석한 리샤오중(李小忠) 신장웨이우얼자치구 교육청 독학(督學·감찰관)도 인민일보에 "시 주석이 각 민족은 석류 씨처럼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공동체 의식 교육을 심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열린 중앙민족공작회의는 소수민족 정책을 총괄적으로 다듬는 자리다.
이번 회의 개최는 신장웨이우얼 등 중국 소수민족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 등 서방 진영의 공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신장웨이우얼과 국경을 맞댄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위기감이 더 커졌다.
지난달 왕 부장 등이 탈레반 지도부와 발빠르게 회동한 것도 ETIM 등 신장웨이우얼 분리 독립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이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대중 공세를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에 나섰다"면서도 "결국 탈레반이 중국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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