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명상? 역설같은 조합
군인과 명상(瞑想)은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組合)이다. 강건한 육신을 바탕으로 한 불굴의 용기와 전의(戰意)로 적과의 대결에 임해야 하는 군인에게, 고요하고 순수한 마음 상태를 추구하는 명상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 육군 상무대(尙武臺)의 교육시설인 ‘명상센터’가 이런 모습으로 탄생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간의 군(軍) 시설에 대해 지닌 대개의 선입견을 일거에 깨버리면서 건축의 담론 수준을 확 높여놓은 '사건'이었다. 이 놀라운 작품을 제대로 알아본 눈은 국내가 아니라 국제적인 감식안(鑑識眼) 속에 있었다.
善과 禪과 線이, 마음의 회로가 되다
우선 건물의 명칭이 특이하다. 왜 선선(善禪)이었을까. 불교재단의 후원으로 지어지는 건축임을 고려해 선(禪, 불교식 명상)을 넣었지만,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돌이켜보는 의미를 담아 ‘선(善)’을 연결했다. 윤경식은 선(禪)의 깨달음과 선(善)의 돌이킴을 이어가는 명상코드를 건축의 선(線)으로 표현해냈다. 낮은 선은 겸허이며, 얇은 선은 소박함이며, 긴 수평선은 꾸준함이다. 평안하게 이어지는 선(線)이 삶의 가치를 키우는 선(善)을 만들고, 인생 전체를 통찰하는 선(禪)에 이르게 하는 장소. 그게 선선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선선 플레이스’다.
명상센터를 둘러보는 일은 마음의 회로(回路)를 거니는 듯 고즈넉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문득 마주 하는 높은 콘크리트 벽체는, 일상의 잡답(雜沓)을 절연하는 단호한 위용을 드러낸다. 그 벽을 지키는 수호군(守護軍)처럼 훤칠한 메타세콰이어의 열병(閱兵)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이 건축가가 왜 사각의 벽과 키높은 메타세콰이어를 세웠는지 알게 된다.
스스로를 단속하듯 벽으로 막혀 있던 사각의 건물은, 뜻밖의 내면을 드러낸다. 앞이 투명 유리로 탁 트여 있고 명상을 하기 위해 앉은 사람들의 눈 앞엔, 건물과 거의 같은 폭의 연못이 펼쳐져 있다. 건물은 그대로 물밑으로 비치고, 건물 위로 솟아오른 메타세콰이어 또한 건물의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비치고 있다. 건축가는 이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명상의 정의(定義)를 그야말로 건축화한 이미지다. 자기를 비추는 것.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가 존재하는 곳을 비추고, 자기의 배경이 되는 전체를 비춰 보여주는 것. 이보다 더 실감나는 성찰(省察)을 보여줄 수 있을까.
카르마의 거울 앞에서 명상하다
윤경식은 이 연못을 ‘업경(業鏡)’이라 불렀다. 카르마(업,業)의 거울이다. 세 가지 업이라면 몸의 업, 입의 업, 뜻의 업이다. 연못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내 몸이 얼마나 작으며 부질없이 흔들리는지 알 수 있고, 내가 한 말들이 오후 햇살의 윤슬처럼 흩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내가 함부로 낸 ‘뜻’이 제대로 펴지지 않고 왜곡되어 퍼져나가는 것도 깨닫게 된다. 건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건축 속에 들어가 있는 자연과 허공의 공간과 그 안에 앉은 인간이 저절로 ‘언어’를 만들어내는 플레이스다.
관수(觀水)나 관란(觀瀾)는 옛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이어가는 중요한 방편이었다. 물을 바라보는 것은, 삶의 자잘한 시비가 부질없으며 삶의 시간이 무상하며 인간 또한 흐르는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독락당의 깊은 누대에서 오직 물을 보며 마음을 닦았던 자취가 남아있고 관란(觀瀾)이란 호를 쓰는 조선 생육신 원호(생몰미상)와 의병장 이승증(1515~1599) 같은 이도 있었다. 윤경식은, 이 땅의 ‘관수(觀水)명상’을 새롭게 살려냈다. 예술성과 정신성을, 독창적으로 현대건축의 숨결에 불어넣어 종교와 힐링의 양가(兩價)를 붙잡은 것이다.
건물의 물결과 외부의 물결, 내면의 물결
이 건물이 지닌 디자인 스토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메타세콰이어의 초록이 둘러싼 사각의 반듯한 건축물은 한 이랑의 파도처럼 흐른다. 갇힌 건축이 아니라 흐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안에 들어가 확인해 보면, 종이기둥의 물결치는 열주임을 알 수 있다. 바깥의 물은, 무상(無常)을 비추고, 안으로 흐르는 물은 무념(無念)을 만들어낸다. 그 파도를 받아 생각을 풀고 마음을 여는 조붓한 오솔길이 양쪽으로 벋어있다. 물을 끼고 도는 길이다.
입구 쪽엔 피아노 건반같은 길이 펼쳐져 있는데 가만히 보면 디딤석의 모양이 각각 크기가 다르다. 그저 내딛으면 되는 길이 아니라, 조심(操心, 마음을 잡음)을 형상화한 길이다. 이 ‘조심’은 어디로 향하는가. 조심히 딛는 것은 순간순간의 성의(誠意)이지만 그것이 향하는 것은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는 행위다. 징검돌을 딛듯, 기존의 생각을 벗고 새로운 생각을 향해 건너가는 길. 건물을 나오면 걷게 되는 오솔길은 불교에서 즐겨 활용하는 명상 포행(布行)의 길이다. 걸으면서 참선하는 경건한 행선(行禪, 걷기 선수행)이라 할 수 있다.
투명부처, 공(空)을 설법하다
‘선선 플레이스’에는 투명한 부처가 창 속에 앉아있다. 우리는 부처를 인간 존재처럼 생각하고, 돌덩이같은 실물로 생각하고, 단단히 존재하는 무엇으로 생각하지만, 이 건축가는 그 망상(妄想)을 여지없이 깨준다. 부처에게 무슨 몸이 필요한가. 깨달음에 무슨 ‘존재’가 필요한가. 그 질문을 하기 위해 초록의 풍경 속에 부처가 앉아 말없이 설법하고 있는 장면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그저 빈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의 실체는 ‘스스로 지닌 고유의 것(自性)’이 없으며, 잠시 인연으로 뭉쳐져 있고 결합되어 있을 뿐이라는 인식이다. 이 투철한 ‘존재’ 성찰은, 우리가 부질없는 탐욕과 집착과 갈망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저 투명부처를 보고 있는 것만한 ‘깊은 명상’이 없다.
글로벌의 건축디자인 전문가들은, 저 명상센터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건축의 절묘함이나 기법의 탁월함을 보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선선 플레이스’의 피상(皮相)을 본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설계하고, 명상(瞑想)이라는 행위의 정의(定意)를 설계한 탁월한 창조자를 보았을 것이다. 물의 반영(反映)을 디자인하여, 그것이 그 건물에 앉은 인간의 내면에 출렁거리도록 한 신개념의 ‘공간’을 만들어낸 인간건축의 선각(先覺)을 괄목했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파격과 창조의 길은, 지금 이후 상상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담았을 것이다.
디자인의 무위자연
“건물 안에 들어가서 어떠한 명상 관련 프로그램을 체험하지 않아도, 이미 건축물이 주는 고유성과 시각적 감동으로 인해 큰 힐링을 받게 됩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이 말은, 디자인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새롭게 각인시킨다. 그가 건축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건물의 공기며 둘레이며 물이며 그저 자연일지 모른다. 비움(空)과 흐름(流)과 비춤(影)과 건너감. 명상이란 말이 담을 수 있는 저 세부의 과정들이 건물에 드는 은은한 빛처럼 저절로 흡수되는 ‘힐링’. 종교의 체취가 거의 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목표를 온전히 이뤄내는 솜씨를, 그리고 철학의 심오함을 굳이 앞세우지 않더라도 공간에 배어있는 뚜렷한 철학을 느끼는 포행(布行)의 코스를 그려내는 솜씨를, 유럽사람들이 더욱 놀랍게 쳐다보지 않았을까.
이상국 논설실장
국제건축상 21회 수상한 '윤경식 신드롬'
[취재 메모] 현대건축 담론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건축, 혁신적이고 주목할 만한 건축을 선정하는 세계건축상(WA)은 세계 53개국 200여명의 건축 전문가로 구성한 심사위원단이 10개의 대상 작품을 선발한다. 이밖에도 참가자와 이전 대회 당선자들이 투표로 5점의 특별상을 뽑기도 한다. 국제건축상 중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회를 치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작년 대회에선 총 10개의 대상 작품 중 한국 건축가 작품이 2개나 포함되었는데, 두 작품 모두 윤경식(㈜한국건축 회장)의 작품이었다. 그는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장 톱 10’, <뉴욕타임스>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건축물’에 포함된 해슬리 나인브릿지의 클럽하우스를 설계했다. 세계건축상 건축가특별상을 받은 ‘여주 명상의 집’ ‘IK 본사 사옥’과 ‘동훈 힐마루 CC’,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 본상을 수상한 ‘사랑빚는교회’와 ‘백양사 영혼의 힐링하우스’, ‘도선사 소울포레스트’ 등 많은 건축을 통해 자연 친화적 사고와 철학적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의 미를 조화롭게 구현하는 건축가로알려져 있다. 이번 수상으로 윤경식은 세계적 규모의 국제건축상을 21번째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 사진 = 김종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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