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부 “자발적 정보공개”라지만··· 45일 내 제출 압박
26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백악관과 미 상무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글로벌 쇼티지(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세 번째 반도체 회의를 개최한 가운데, 참석 기업인 삼성전자도 ‘자발적 정보공개’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애플, 인텔, 제너럴 모터스, 포드,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인 메드트로닉, 스텔란티스 NV 등이 참석했다.
특히 상무부는 이날 회의 참석 기업들에 앞으로 45일 안에 재고·주문·판매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질문지에 답할 것을 요구했다. 정보 제공은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게 상무부의 공식 입장이나, 지나 러몬드 상무부 장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이를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말해 사실상 강제적 조치임을 내비쳤다.
러몬드 장관은 그러면서 ‘국방물자생산법(DPA)’ 적용을 언급, 이에 근거해 기밀정보를 받아내겠다는 경고장을 보낸 셈이다. DPA에는 국가 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주요 필수물품의 생산을 확대하거나 가격 담합 등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제정된 연방 법률로, 당시엔 군수물자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제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진자 폭증 당시 이 법을 발동해 3M에 마스크 생산을 요구했다.
실제로 미국 시장의 반도체 수급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자동차 업계의 생산량은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미국 내 자동차 재고는 106만대 수준으로, 지난해(257만대)의 절반도 안 된다. 신차 공급난이 이어지면서 중고차 가격은 연일 폭등하고 있다.
당장의 반도체 공급난도 문제지만, 전 세계 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도 백악관이 삼성전자와 TSMC 등을 압박하는 이유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지난해 12%로 하락했다. 백악관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보조금 100억 달러(약 11조7680억원)와 최대 40% 세액 공제 등 지원책을 담은 초당적 법안 ‘칩스 포 아메리카’를 내놨다.
◆자국外 기업 투자 압박↑··· 삼성전자, 20조원 파운드리 공장 부지 내달 확정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생산 내재화’를 이유로 자국 외 기업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이자 삼성전자의 부담은 한층 커졌다. 민감한 기술·영업 정보가 자칫 경쟁 업체에 넘어갈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재고를 공개할 경우, 구글이나 아마존 등 대형 고객사로부터 가격 인하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과 LED 헤드램프 등을 생산한다고 알려졌지만, 회사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객사들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애플과 테슬라 입장에서는 특정 반도체 기업에 파운드리를 맡기는 것이 알려지면 차기 신제품의 종류와 성능이 새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국내 기업들이 애플을 '미주향 기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감한 정보 공개 숙제를 떠안은 삼성전자로선 복안이 마땅치 않다. 다만 앞서 공언한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 부지 확정을 바이든 정부 ‘달래기 카드’로 쓸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또는 인근 윌리엄슨 카운티의 테일러시를 최종 부지로 저울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회의에 바이든이 원하는 투자 방안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르면 내달 중 제2 파운드리 공장 부지 등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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