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D.P.'와 '오징어 게임'... 문제는 콘텐츠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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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입력 2021-09-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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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2010년대를 전후로 해서 문단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되었던 화두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면서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시를 쓰는 것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이었다. 미학적인 성격이 강조되면 메시지가 묻히게 되고, 메시지가 두드러지게 되면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가능한 불가능’이라는 표현으로 이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최근 ‘시와 정치’ 논의에 부쳐」,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미학적 가치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일에 있어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 서사와 문학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엄청난 자본과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영상 서사의 목표는 이용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매년 도전하는 넷플릭스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 디즈니의 태도는 영상 서사에 있어서도 재미나 오락이 다일 수는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니 어쩌면 이용자들이 영상 서사에 기대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내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이미 오래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천병희 옮김, 37쪽, 서울: 문예 출판사)을 통해 '정확한 모방은 인간에게 쾌감을 준다'고 했으니, 현실을 잘 재현해낸 서사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이 서사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20일을 사이에 두고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D. P.'와 '오징어 게임'에 대한 반응은 이례적인 것이다. 두 작품에 대한 선호나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크게 엇갈리게 나타나고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두 작품 모두 대한민국의 중요한 사회적 현실을 다루고자 했다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현실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D. P.'와 '오징어 게임'에 대한 반응이 말해주는 것은 불편한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서사에 대한 이용자의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D. P.'는 군대라는 부조리한 공간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군 생활을 한 입장에서 과장되거나 극단적으로 다루어진 부분이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D. P.'를 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올 정도였다는 반응이 있는 것을 보면 군대의 현실을 잘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은 목숨을 건 게임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내에서 다뤄지는 게임 자체가 일종의 알레고리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군대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D. P.'에 대한 이레적인 관심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전쟁과 같은 일상을 견뎌야 하는 대한민국의 분위기는 '오징어 게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양극화가 첨예화되면서 삶의 조건이 열악해지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아카데미가 2020년에 '기생충'을, 2021년에 '노매드랜드'를 선택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문학작품에 기대하는 것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용자들이 영상 서사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락적으로 재밌으면서도 미학적으로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메시지가 담긴 서사가 아닐까 한다. 'D. P.'와 '오징어 게임'이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작품에 대한 미학적 가치를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다만 두 작품 모두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고, 많은 이용자들이 거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재미있으면서도 비평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긴 작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봉준호가 연출한 '기생충'과 같은 작품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바 있다. 플랫폼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콘텐츠 수급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다고 해서 무조건 이용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는 문학작품을 만들기 어렵다고 얘기했는데, 이는 영상 서사에도 해당되는 난제다.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 한 해 전인 2018년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작품 속에서 알기 쉽게 가시화된 감독의 메시지는 솔직히 말해 대단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영상은 감독의 의도를 초월해 눈치채지 못한 형태로 ‘찍혀버린 것’ 쪽이 메시지보다 훨씬 풍성하고 본질적”이라는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진 영상미학에 대한 관점이다(「영화라는 공동체」, 72쪽,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서울: 바다출판사).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관점에 동의하는 편이며, 솔직히 말해서 'D. P.'와 '오징어 게임'이 이와 같은 영상미학을 구현해 내는 데까지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두 작품의 미학적 성취가 갖는 의미를 폄하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미학적인 성취를 거두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를 하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플랫폼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내 돈을 내고 내 시간을 들여 보는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큰 반응을 얻어내는 콘텐츠가 왜 성공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콘텐츠 성공 요인에 대해서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용자들은 더욱 많은 것을 영상 서사에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디지털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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