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철학자와 사상가 중에서 우리말글의 특징과 개념을 활용해 독창적인 신학(神學)의 공간과 체계를 만들어낸 사람은 류영모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를 연구하는 많은 후학들은, 류영모의 ‘우리말 철학하기’에 갈채를 보냈지만 그같은 언어 주체성의 결과를 밝혀내고 그것이 신학적 사유(思惟)를 적실하게 드러내고 그 세계를 확장했는지 밝혀내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 같다. 그가 신학언어로 활용한 우리말글이 다른 언어문화권의 사상과 어떤 의미있는 차별화를 이뤄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의미있는 작업이다.
서구로 '로컬化'한 기독교에, 한글의 '얼'을 입히다
우선 류영모는 왜 우리 말글을 애용하여 생각의 불쏘시개로 삼았는가. 그가 종교사상의 개념들을 우리 언어로 심화하고자 한 생각의 바탕에는, 인간 신앙의 일원성(一元性)에 대한 신념이 있다. 세계의 많은 신앙들은 저마다 다른 신앙적 대상(즉 신(神))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보편적으로 접속한 동일한 신을 읽고 형상화하거나 의미화하는 과정에서 로컬화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문화의 차이와 신앙 추구의 방식이, 신에 대한 입장과 관점을 다르게 만들었으며 그 형상화에 있어서 서로 변이를 일으킨 결과 다르게 보이는 믿음과 사상 체계가 생겨났다는 것이, 류영모의 생각이다.
이 생각을 서구 기독교에 적용하면 이렇다. 기독교는, 서구의 역사와 문화와 관점이 만들어낸 ‘신에 대한 서구적 리포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리포트는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말씀은 서구 언어(서구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로 기록되고 유통되었다. 우리는, 서구의 사유체계로 우리의 사유체계를 바꿔 기독교에 접속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서구 언어가 가리키고 있는 기독교의 본질(‘참’)을 우리 언어와 문화로 밝혀내고 우리 말글과 사유의 말씀으로 닦아야 한다. 그것이 참으로 기독교의 본령에 닿는 길이다.
기독교의 본령은 기독교를 배태한 서구만의 신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신이라는 입장을 지녔기에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 신은 모든 피조물의 유일한 고향이며 하나의 조물주일 수 밖에 없다. 영적 언어의 탐색과 수립은, 같은 신에게로 가는 우리의 길을 닦는 것이다.
우리 말글로 신과 교통하는 길을 찾다
류영모가 우리 말글로 종교적 사유를 펼친 일은, 단순한 애국애족의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우리 말글로 신에게로 교통하는 길을 찾아나선 결과이다. 그래야 서구 기독교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진리와 근원적인 생명성을 ‘우리’의 것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의 보편성을 우리 언어체계로 확보함으로써 서구문화에 더부살이하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 주체적인 종교로 입론(立論)할 수 있다는 이 생각. 이것이 다석 신학의 탁월함이다.
말과 글은 신의 뜻을 담는 신기(神器)이자 제기(祭器)라고 했던 사람이 바로 그다. 우리말의 어감과 어원과 상징과 암시, 그리고 기호학적 면모까지 십분 활용하여 신관(神觀)을 다듬어 나간 일은 이제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영적 언어 발굴의 ‘대사건’이었다. 이 점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한글성자’ 류영모를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류영모가 남긴, 심오하고 난해한 시 ‘작대기 노래’를 한번 맛보자.
다석 사후 40년간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묻혀 있었던 노래다.
이현필에게 건넨, 류영모의 '작대기 노래'
다석 류영모가 ‘맨발의 성자’로 불린 이현필(1913~1964)과 함께 광주 양림동 양림교회 앞을 지날 때였다.
"이이이이이"
류영모가 나직한 소리를 냈다. 처음엔 그냥 내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계속해서 그 소리를 내자, 옆에서 걷던 이현필이 입을 뗐다.
"이보다는 아가 먼저 아닐지요?"
이것이 두 사람이 나눈 첫 대화였다.
류영모가 이현필 옆에서 '이'를 계속해서 발음하며 노래로 부른 것은, '신통(神通, 하느님과 통함)'의 흥(興)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모음 ㅣ는 머리를 하늘에 둔 정신입니다
"나는 몸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정신입니다. 정신은 밖에서 보이지 않지만 정신은 영원합니다. 정신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있는 존재이기에 나는 막대기를 세워 영어로 I(아이, 나)라 하듯이 모음 하나로 ㅣ라고 합니다. 이 이 저 이라 하는 이지요. l긋이 태초에 맨 첫 긋과 맨 마지막 맞긋이 한통이 되어 영원한 생명이 됩니다."
이현필 옆에서 나직히 불렀던 류영모의 '이이이 송'은 어떤 것이었을까. 일제 때에 쓰던 다석수첩에 이 노래가 적혀 있다.
ㅣ (이) 소리 (하늘소리)
ㅣㅣㅣㅣ ㅣㅣㅣㅣ ㅣㅓㅣㅓ ㅣㅓㅣㅓ
ㅓㅣㅓㅣ ㅓㅣㅓㅣ ㅣㅣㅣㅣ ㅣㅣㅣㅣ
ㅣㅓㅣ ㅣㅕㅣㅡㄹㅣ ㅓㅣㅣㅕ ㅣㅓㄹㅏ
모음만 있으니 낯설어 보인다. 자음을 붙여보자.
이이이이 이이이이 이어이어 이어이어
어이어이 어이어이 이이이이 이이이이
이어이 이여이으리 어이이여 이어라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하느님과 소통하는 소리다.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읽힐 수 있다.
하늘을 향해 정신을 세운다. 이이이이 이이이이
정신을 세워 하늘과 잇는다. 이어이어 이어이어
하늘과 이르려니 어찌 이을지. 어이어이 어이어이
하늘을 향해 정신을 세운다. 이이이이 이이이이
이것을 어이 하여 하늘과 이으리. 이어이 이여이으리
어찌 잇는가 그냥 하늘과 이어라. 어이 이여 이어라
알고보니 하늘의 뜻 잇는 계천((繼天) 노래
하느님의 뜻을 잇는 것을 '계천(繼天)'이라 한다. 영어의 religion(종교)은 re+ligion(ligare)으로 '다시 잇는다(묶는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4세기 신학자 락탄티누스(240?~320?)의 어원설이다. 라틴어의 religio(의례, 제사)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BC 1세기의 철학자 키케로는 religio를 re+ligare(re+read, 다시 읽다)에서 온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신의 말씀을 다시 읽는 것이 종교라고 본 것이다.
류영모는, 하늘과 인간을 직접 잇는 기도와 찬송을 '이이이 소리'로 표현했다. 한글의 모음(母音)인 'ㅣ'라는 언어기호가 지닌 심오한 형상을 인간신앙의 이미지로 승화해놓았다. 그 형상의 핵심은 인간과 신을 잇는 것(繼)이다. 류영모 사상의 간결하고 탁월한 면모는 이런 점에 있다.
즉 모음만으로 된 'ㅣ'는 정신이 하늘과 통하는 모양을 표현한, 다석의 사상적 핵심 언어였다. 작대기만 서 있는지라 작대기송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바싹 세워 하늘과 한통이 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고자 하는 것. 사람을 가리켜 이 이, 저 이라고 부를 때 그 뜻은 단순히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늘과 통한 것, 그 사람의 처음과 끝이 한 통이 된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얼생명 인간 'l'에, 받침을 넣어보면 삶이 나온다
얼생명으로 사는 인간은 '이'의 존재다. '이'는 '그'나 '저'와는 달리, 지금 여기를 가리킨다. 이승과 이곳 이때가 그런 의미다. '이'에는 가온찍기로 '긋(점)'을 찍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얼삶의 양상이 들어 있다. 이는 받침을 지니면서 뚜렷하게 인간의 얼삶을 드러낸다.
입는 이. 인간은 몸을 입는다. 옷을 입는다. 은혜를 입는다.
있는 이. 인간은 존재한다. 인간은 지금 여기로 존재한다.
잇는 이. 인간은 신과 삶을 잇는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일어나는 이. 인간은 주저앉았다 일어난다. 성장하여 바로 선다
익는 이. 인간은 깨닫는다. 인간은 성숙한다. 인간은 때를 기다린다.
읽는 이. 인간은 말씀을 읽는다. 인간은 자기를 읽는다. 인간은 소명을 읽는다.
잃는 이. 인간은 몸을 잃는다. 인간은 삶을 잃는다. 인간은 잃어서 얻는다.
잊는 이. 인간은 모든 것을 잊는다. 잊어서 다시 잇는다. 잊어서 다시 있게 된다.
인간이 세상에서 얻는 모든 경험들은 '이'에 다리를 붙여 걷는 것과 같다. 그 걸음은 삶을 개관하고 통찰하게 하며, 신에게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다석의 한글 신학은 그저 한글 애용의 구호 정도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즉흥적인 언어 유희로 신기(神奇)를 추구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한글 속에 신이 있다고 믿었고, 한글은 신이 내리는 뜻을 받아적은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말들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는, 오로지 신의 속삭임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연히 말들이 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엔 오랜 시간을 통해 형성된 고차원의 무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다석은 이걸 발굴하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어 드러낸 것이다. 아무도, 이런 신학적 작업을 하지 않았다. 오직 다석만이 이 길을 걸어갔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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