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오후 4시께, 자전거우선도로에서 택시가 자전거를 추월하고 있다. [사진=최태원 수습기자]
"페인트는 다 벗겨지고, 차들은 똑같이 거칠고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인근 '자전거 우선도로' 주변. 도로 위를 달리던 차가 정차할 때까지 기다리던 A씨(65)는 본지 취재진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자전거우선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축하기 전까지 선제적으로 시행된 사업이다. 자전거와 차량이 공유하는 도로로, '안전한 자전거 타기 문화' 등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본지 취재결과 종로구, 성동구, 영등포구 등에 위치한 자전거 우선도로에서는 자전거를 추월하는 차량이 다수 발견됐고, 도로 위에는 자전거 우선도로 표시가 지워지는 등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선유도 인근 자전거 우선도로. 취재진이 자전거 우선도로 실태에 대해 묻자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이용하던 B씨(47)는 자전거 우선도로가 있었는지를 되물었다. 그는 "어디가 자전거 우선도로인지 잘 모르겠다. 이 근방에 자전거 우선도로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황당해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골목길을 지나던 C씨(82)도 "도로에 색이 칠해져 있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가야 좀 티가 나게 칠해져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따릉이'를 이용해 약속 장소로 향하던 이재혁씨(33)는 "자전거 우선도로를 자전거 이용자뿐만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자전거 우선도로인데 자전거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자전거를 ‘우선’하지 않아도 차량 운전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서울시 자전거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자전거우선도로에서 운전자를 대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법적 제재는 없다"고 밝혔다.
노면 표시 시인성이 떨어지고 표시가 지워진 채 방치되는 등 관리 부족 문제도 드러났다. 자전거 우선도로변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D씨(33)는 "항상 차를 타고 다니는데 자전거 우선 도로인 줄은 전혀 몰랐다"며 "알고 나니 표시가 보이지만 모를 때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사거리 자전거 우선도로의 노면 표시가 훼손돼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자전거 우선도로는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노면 표시에 암적색의 바탕색을 입힌다. [사진=김슬기 수습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자전거 교통사고 발생은 5667건으로, 그중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서울시(1802건)이다. 지난 2018년 1471건에서 2019년 1766건, 지난해 1802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오는 2024년까지 자전거우선도로 시인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자전거우선도로에 시인성 좋은 암적색 바탕색을 지난해 4.7㎞를 시작으로 올해부터 매년 20㎞씩 순차적으로 입힌다는 계획이다. 다만 우선 되지 못한 도로는 차후 수년 동안 기존 표시 만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성동구청 교통행정과 관계자는 “지워지거나 벗겨진 표시의 경우 신고를 받거나 부정기적인 순찰 활동 중 발견하게 되면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이어 "(성동구청은) 내년에 자전거 이용 활성화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한다. 자전거우선도로 관련 내용도 포함돼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자전거 우선 도로'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문철 변호사는 “자전거 우선도로는 아무 의미 없다. 오히려 자전거 우선이니 자전거가 도로 가운데로 가도 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어 사고 위험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자전거 도로는 차도와 구분돼야 실효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시행정으로 만들어지면 그에 따른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모르는 시민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공공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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