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박씨는 고개를 들어 가게 입구 쪽 테이블을 힐끗 바라봤다. 불이 꺼진 불판 위 먹다 남은 고기와 반찬, 채소 등이 담긴 식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박씨는 이내 기자를 등진 테이블에서 시선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자영업자가 죄인인가요. 40년을 넘게 식당 일이 천직인 줄 알고 열심히 살아왔어요. 근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2년을 이렇게···.” 박씨의 독백에 맞은 편에 앉은 이씨는 고개를 떨궜다.
이날 0시로 재개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자영업자들이 다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자들이 만난 명동, 홍대, 영등포 일대 식당과 술집, 노래방, PC방, 스크린골프장 등 자영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방역 강화 조치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로 겨우 숨통을 튼 지 한 달 반 만의 일이다.
오후 9시 영업 제한이 걸린 식당에서는 자영업자들이 분노에 찬 채 이날 장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해물찜집 사장인 60대 남성 정모씨는 “장사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 같다”며 “9시 영업 제한의 경우, 음식도 하고 세팅도 하고 해야 해서 사실상 7시 반이 넘으면 손님을 받을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시각 서울 영등포구에서 복집을 운영하는 40대 여성은 계산대 옆에 있는 벽걸이형 달력을 가리키며 “옛날 같으면 이렇게 말씀 나눌 시간도 없다. 우리는 연말이 제일 바쁘다”며 “오늘 하루만 예약 4팀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하루 평균 4~5팀이 예약을 무른다는 설명이다. 실제 달력에는 검은색 글씨로 예약자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18일 이후로는 빨간색으로 취소선이 그어진 부분이 절반을 넘기고 있었다.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들 사이에서 “아 벌써 가네” “어쩌겠냐”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0대 남성인 술집 사장은 손님들에게 “또 오시라. 영업시간 제한이 있으니 다음에는 더 일찍 시간 당겨 와주시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아무리 상황이 심각하고 확진자가 줄어야 한다지만, 최소한 10시까지는 영업을 하게 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시민들이 요기하거나 술을 마시고 흔히 들르는 노래방이나 PC방 등 업주들도 “죽을 맛”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8시께 홍대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30대 남성 성모씨는 “거리두기 이전 동시간대와 비교하면 매출이 반 토막이 아니라 ‘3분의1 토막’이 나는 중”이라며 “저녁 7시부터 새벽 1~2시까지 ‘피크타임’인데 노래 부스 30개 중 절반도 안 찼다”며 혀를 찼다.
이날 오후 9시 30분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PC방 아르바이트생인 20대 김모씨는 “오후 10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치면, 한 달에 매상이 100만원 넘게 까인다고 보시면 된다”며 “새벽까지 계시는 분들이 음식이나 음료수를 시켜 먹는 수익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10시께 서울 명동의 한 스크린골프장 사장은 “지난주 토요일 매출에 비하면 오늘은 70% 정도밖에 안 된다”며 “인근 을지로 쪽 직장인들이 술 한잔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오후 9시까지만 영업하게 되면 사실상 한 타임 손님을 통으로 못 받게 되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영업자 방역 지원금 100만원 지급’ 정책에 분통을 터뜨리는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정씨는 “가겟세만 하루에 100만원 나온다”며 “이건 뭐 어린애 장난이냐”라고 반문했다. 박씨도 “고작 100만원이라니, 자영업자들 생명줄 다 끊어 놓고 놀리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시민들도 연말 모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아쉬움과 자영업자를 향한 걱정을 털어놨다. 20대 남성 이모씨는 “연말이라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많은데 오래 보지 못해 아쉽다”며 “방역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자영업자들을 잘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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