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결심을 했다. 불혹을 맞아 프라하 여행을 떠나기로. 큰마음 먹고 여행 계획을 세우던 그즈음,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봤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확산세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아, 이럴 수가······. 체코와, 정확히는 프라하와 인연이 없나 보다.' 체념하기로 했지만,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가지 못한 곳, 닿지 못한 그곳에 대한 그리움은 화석이 되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채 딱딱히 굳어 있었다.
그러던중 체코가 한국을 안전 국가로 정하고 한국인 여행객이 격리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도 체코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PCR 검사 등 각종 준비를 철저하게 마친 후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핀란드 헬싱키에서 경유했다)에 몸을 실었다.
프라하는 역시 치명적인 매력을 품은 도시였다. 중세인가, 아니면 근대인가. 이즈음에서 멈춘 듯한 광경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프라하 구도심인 역사지구는 1992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프라하에 도착하면 무조건 가장 먼저 찾게 된다는 그곳, 카를교로 향했다.
블타바강과 주변의 프라하성, 화약탑과 어우러진 이곳,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낭만이 넘쳐흐르는 듯했다.
1357년 카를 4세가 고딕 양식 돌다리를 지었다. 길이 520m의 보행 전용 석조다리 카를교에는 양쪽 난간에 보헤미아 성인 30명의 동상이 있다. '강물 위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프라하. 도시를 관통하는 블타바강의 양쪽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랜 세월의 더께를 품은 도시를 역시 예스러운 카를교가 잇는다.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되는 도시 자체에 유럽인들조차 감탄해 마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하고 있음에도 카를교와 도시 주변에는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프라하의 연인'이 된 듯 카를교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도심의 낭만을 더한다. 걸출한 조형물을 감상하며 예술과 역사를 논하는 이들도 있다.
지인이 "이곳에서 맛본 맥주 필스너 우르켈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지만, 맥주를 마시지는 않았다. 주변 풍광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만지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석상을 만지는 것은 잊지 않았다.
카를교에서 나와 향한 곳은 천문시계탑. 인간 드론이 되어 구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만큼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과연 명당이다. 틴 성모 성당, 성 미콜라세 성당을 비롯해 상아색 벽과 진홍색 지붕으로 알록달록한 프라하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짧은 동선이지만,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발길 닿는 곳마다 재미가 가득하다.
오랜 소망 목록(버킷리스트)이기도 했던 만큼 그리움도, 기대감도 컸기에 반드시 가야겠다 마음먹었던 체코 프라하 여행이다. 행여 이곳에 가서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는 못했다.
여행 내내 실망은커녕 감동과 낭만이 가득했고, 행복이 넘쳐흘렀다.
또다시 해외여행길이 막힌 이때, 두 달 전 다녀온 체코 여행의 추억을 찬찬히 꺼내는 지금, 사진첩을 열고 그날의 감동을 정리하는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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