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1915년, 1917년)에 확인된 6기의 고분과 1966년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기의 고분이 정비돼 있는데, 당시 고분들의 조사내용이 소략할 뿐만 아니라 사진과 도면자료도 매우 부족한 편이어서 백제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4호분의 경우에는 도면조차 남아 있지 않고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돼 가장 먼저 재조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사 결과, 4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4호분 무덤 입구(묘도)의 바닥 양쪽에서는 매납(埋納)시설 2기가 처음 확인됐는데, 매납시설 안에는 토기를 똑바로 세워 넣은 뒤 편평한 판석을 뚜껑으로 덮은 형태로 확인됐다.
이러한 시설은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로 백제시대 장례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
특히, 묘도를 축조한 뒤에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매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의과정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토기에 담긴 내용물을 밝히는 것도 당시 제의과정을 보다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되어,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과 협업하여 토기 내부에 쌓인 흙에 대한 유기물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고대사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매납시설은 백제 사비기 장례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올해 3월부터 3호분(서하총)의 발굴조사를 추진한다.
3호분 역시 4호분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
3호분은 지난해 조사됐던 4호분 남쪽에 인접해 있어 부여 왕릉원 내 고분의 입지와 조영 순서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성과가 도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부여 왕릉원의 체계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백제 사비기 왕릉원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고자 한다”며 “현재 거대하게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 등을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최신 조사·연구 성과가 온전히 반영된 왕릉의 정비·복원 안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3호분 조사 진행과 동시에 4호분의 상시 현장공개도 병행하고, 전체 조사과정을 영상으로 제작·공유해 조사 성과를 국민에게 빠르게 공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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