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연일 고공행진 중인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매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 6%를 넘보고 있는 데다, 향후 물가가 더 뛸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높은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고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에 충실할 것을 천명했다. 한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따라 사상 유례없는 금리 인상 릴레이로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2.75%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며 긴축적 통화정책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0일 열린 한은 창립 72주년 기념사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물가상승압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며 공격적인 금리 인상 행보를 예고했다.
이 총재의 매파적 발언은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진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듯한 모습이다. 이 총재는 앞서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인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 직후 간담회에서도 "물가 상승의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더 큰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취약계층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되지만 현 상황에서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산되면 그에 따른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은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서도 물가 대응을 위한 통화정책 정상화의 명분을 쌓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인플레이션 확산세가 장기화될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긴축적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진단했다. 원·달러 환율,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어서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시각이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한은이 물가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기관인 만큼, 기대 인플레 등에 대한 우려가 크고 매우 유의하고 있다"면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을 어느 수준까지 통제할 것이냐에 대해 숫자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기대인플레이션이 관리되고 중장기적으로 거시경제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
한은의 이 같은 기조에 따라 당분간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 역시 '브레이크' 없는 직진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2.50~2.75%로 보는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인 기대'라고 평가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1.75%로, 올해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는 총 4차례(7월, 8월 ,10월, 11월)가 남아 있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가 한 번에 0.25%포인트씩 조정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2.75%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올해 남은 모든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한은은 향후 금리 인상 수준은 0.25%포인트가 적절하다면서도 유사시 한 번에 0.5%포인트를 올리는 빅스텝에 대해서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 부총재보는 "중국 경기 둔화, 세계 경제 성장 둔화 등 경기 하방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며 "상황을 봐가면서 혹시라도 (빅스텝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면 시장 등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그 기대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