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대길 기자]
의료사고로 숨진 환자를 두고 ‘재수가 없어 죽었다’는 등 막말을 한 의사를 비판하는 전단을 뿌린 행위는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의료사고로 모친을 잃은 A씨는 수술 의사가 ‘돌팔이 의사가 수술한 건 운이 좋아 살았고 자기가 수술한 건 재수가 없어 죽었다’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병원 앞에서 배포했다.
1심은 A씨가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A씨가 사실을 적시했다고 보고 벌금을 50만원으로 줄였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A씨 전단 배포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명예훼손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의사가 유족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환자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며 “의료인 자질과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다른 명예훼손 사건에서도 공공의 이익을 들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했다. 고등학교 동창 10여명이 참여하는 단톡방에 ‘○○가 내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감방에서 몇 개월 살다 왔다. 너희도 조심해라’고 글을 올려 기소된 사건이 그 사례다.
1·2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50만원에 선고를 유예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 게시글은 채팅방에 참여한 동창들로 구성된 사회집단의 이익에 관한 사항”이라며 “동창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려는 목적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전파 가능성 등 명예훼손 구성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해석하는 판결도 내놨다. 빌라 관리자 부부가 누수 공사가 늦어지는 이유를 전화로 설명하며 세입자를 탓했다가 기소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전파 가능성과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1·2심은 이들 부부에게 벌금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명예훼손 혐의를 무죄로 봐야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에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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