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돌봄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6월부터 가사·돌봄 노동자를 전문 직업인으로 인정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됐으나 실질적인 인식 개선은 아직 요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19일 한국가사노동자협회에 따르면 가사돌봄유니온·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지난해 7월부터 8일간 가사·돌봄 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례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1명 꼴로 성희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9명, 아이 돌봄 노동자 37명 중 1명이 "업무 중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변에서 성희롱 경험을 들었던 응답자까지 포함하면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16명으로 늘어났다.
성희롱으로 느낀 사례로는 △시선이 몸을 훑어볼 때 △일하는 중에 남성 고객이 속옷만 입고 다닐 때 △‘엉덩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할 때 등이 있었다. 화장실 청소 중에 샤워하려고 알몸으로 들어오거나 설거지 중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이번 조사에는 '신체적 재해'에 대한 응답도 포함됐다. 가사 돌봄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었다.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38명(49%)이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락스나 세제 등 청소용품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및 두통은 21%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디스크나 타박상이 각각 12%, 3.9%를 차지했다. 아동 돌봄 노동자도 35명 중 19명인 54%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었다고 답했다.
성희롱 등 고충을 겪은 가사·돌봄 노동자가 전문기관에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은 거의 없었다. 응답자들의 38.8%가 ‘혼자 처리하거나 삭인다’고 답했고, 8.5%는 ‘하소연할 상대가 없다’고 응답했다. ‘노동자상담센터나 여성단체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다만 상담·지원 기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높았다. 100명 중 69명이 상담센터 혹은 가사노동자지원센터가 꼭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노동계나 서비스 제공 업체가 마련한 상담 창구가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송미령 한국노총전국연대노동조합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사무국장은 "노동자 센터의 상담사도 노동을 포괄하는 분이 맡고 있다"며 "가사 노동이라는 직무 이해에 기반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파출부 부리듯...'가사관리사'로 불러달라"
응답자들은 ‘이용자의 하대하는 태도’를 정신적 스트레스 원인 1순위로 꼽았다. '정신적 재해' 관련 조사에서 ‘이용자의 하대하는 태도로 인한 감정노동’이 24.3%로 첫째를 차지했다. ‘기본적 배려없음’이 17.1%로 두 번째였다.
응답자들은 기본적인 처우 개선을 위해 이용자들의 인식 개선이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가사관리사 조모씨(61)는 “과거 파출부나 가정부가 부당한 대우를 겪었던 것처럼 아랫사람이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있다”고 전했다. 다른 응답자는 “가사·돌봄 노동자도 엄연히 직업인데 ‘아줌마’라며 하대하는 경우가 많다. 한참 어린 고객도 파출부 부리듯 갑질한다”며 “호칭을 가사관리자님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가사·돌봄 서비스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응답자는 “코로나 시국 이후 요구가 많아졌다”며 “노동자는 대부분 중년 여성인데 정말 무겁고 힘이 필요한 작업을 시킬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관계자는 “업무 표준화가 돼있지 않아 과도한 요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단이 부족하다”며 “가사·돌봄 노동자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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