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선호 "독특한 누아르 '귀공자'…오히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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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3-06-2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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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공자' 배우 김선호 [사진=NEW 제공]

박훈정 감독의 말은 사실이었다. 누구도 영화 '귀공자' 속 김선호를 대체할 수 없었다. 예측하기 힘든 감정들을 넘나들고 독특한 리듬으로 캐릭터의 맛을 살리는 배우. 오로지 김선호만이 '귀공자'가 될 수 있었다.

영화 '귀공자'(감독 박훈정)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분)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 분)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추격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귀공자'는 제 스크린 데뷔작이에요. 모든 게 처음이라서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그 두 감정이 공존하는데 설렘이 더욱 큰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굉장히 말을 잘하고 능숙한 줄 알았는데 어찌나 긴장했는지 '귀공자' 기자간담회 때 엄청나게 뚝딱거리더라고요."

그동안 드라마 '스탠드 업' '갯마을 차차차' 등 로맨스 장르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었던 김선호는 '신세계' 'VIP' '마녀' 시리즈 등 누아르·판타지 장르를 연출해온 박훈정 감독의 신작으로 스크린 데뷔하게 되었다. 전작들과 결이 다른 '귀공자'는 김선호에게도 큰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개인적으로 박훈정 감독님의 굉장한 팬이에요. '신세계' '마녀' 시리즈를 굉장히 재밌게 봐서 (감독이) 만나자고 제안해 주시자마자 '알겠다'고 했죠. 감독님은 생각보다 더 멋진 분이더라고요. 위트 있는 분이었어요. 오랫동안 작품과 '귀공자'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 해주셨죠. 이야기를 들을수록 '와 내게 이런 역할을 주셨다고?' 놀라운 마음이 들었어요. 꼭 참여하고 싶었고 욕심이 났죠."

영화 '귀공자' 배우 김선호 [사진=NEW 제공]


극 중 김선호는 '마르코'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귀공자' 역할을 맡았다. '마르코'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는 그는 '마르코' 주위를 맴돌며 주변을 초토화 시킨다. 웃는 낯에 가벼운 태도로 일관하지만, 무자비한 모습으로 '마르코'를 긴장시킨다.

"감독님께서 '귀공자'를 두고 말씀하시기를 '다양한 면이 있는 친구'라고 하셨어요. 특수요원 같은 면도 있고 싸이코 같은 느낌도 드는 거죠. 복합적이고 매력적일 거라고 설명하셨어요. 그동안 이런 캐릭터를 맡아본 적은 없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로맨스 장르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레 누아르 장르의 무드를 보여드린다면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잖아요. 위트 있고 특이한 면을 가진 캐릭터가 누아르 무드로 바뀌면 관객들을 설득하는 게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선호는 '귀공자'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각본을 쓴 박훈정 감독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귀공자는 왜 마르코를 쫓을까?'였어요.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한다면 조금 더 쉬웠을 텐데. 원초적인 질문부터 캐릭터의 서사까지 일일이 감독님에게 여쭤보았죠. 감독님은 캐릭터 레퍼런스로 '시계태엽 오렌지'(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알렉스'를 제시하셨죠. 선인지 악인지 모르겠고 스스로도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쁜 일인지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극 중 '알렉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떠오르는데요. 감독님께서도 '귀공자'의 미소를 강조하셨었어요."

영화 '귀공자' 배우 김선호 [사진=NEW 제공]


촬영 초반에는 박훈정 감독과 이견을 조율하여 가는 과정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새 작품과 감독을 만나면 으레 겪는 일이었다.

"촬영 초반에는 뭔가 잘 풀리지 않더라고요. 감독님의 방식에 제가 잘 못 따라갔어요. 예를 들어 나무를 본다고 하면 누군가는 '초록색'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푸른색'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감독님의 디렉션과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거죠. 굉장히 남자다운 분이기도 하고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선호는 박훈정 감독에 관해 무한한 믿음과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2021년 사생활 논란으로 캐스팅되었던 작품에서 하차를 결정하고 활동 중단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지만 '귀공자' 측은 그를 기다려 왔다.

"감독님과 스튜디오앤뉴 장경익 대표님께서 '우리는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할 수 있겠느냐'고요. 저의 상태를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저 때문에 촬영이 미뤄져서 손해를 보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더는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죄송한 마음이 컸고 배우로서 더 이상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힘들 수가 없었어요. 고마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선호는 '귀공자' 역을 연기하기 위해 차근차근 액션을 준비했다. 총기 액션부터 카체이싱까지 치열한 준비 과정을 겪었다는 부연이었다.

"감독님께서도 액션이 많을 거라고 하셨어요. 총이 손에 익어야 한다고 하셔서 내내 실제 무게와 같은 가짜 총을 들고 다녔죠. 감독님께서는 리얼한 액션을 추구하셨고 현장에서 유연하게 바꿀 수 있도록 조율해 나갔어요."

영화의 백미 중 하나는 바로 카체이싱. 박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카체이싱에 관해 "각 캐릭터의 성격을 담았다"며 액션 디자인을 설명하기도 했다.

"'귀공자'는 겁이 없다는 설정이라서 굉장히 빠른 속도를 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굉장히 빠르지만 차 내부에 있는 얼굴은 여유로웠으면 하셨고요. 사실 제가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위험하면 어쩌지' 고민했었는데 막상 찍고 나니 즐겁더라고요.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욱 재밌게 하게 되고요."

영화 '귀공자' 배우 김선호 [사진=NEW 제공]


영화의 결말부에 다다르면 2편에 관한 기대도 엿 볼 수 있었다. 박 감독 역시 2편에 관해 염두에 두었다며 영화가 흥행한다면 속편 제작도 열려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감독님께서 2편에 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었어요. '2편을 찍겠다'는 말씀은 아니셨고 '만약 시리즈가 잘 된다면 다음에는 귀공자가 쫓기고 있을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농담 반, 진담 반 하신 말씀 같아요. 감독님께서 불러주시면 당연히 가는 거죠."

박훈정 감독에게 '귀공자'는 애정 가득한 캐릭터다. 광기에 사로잡힌 싸이코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로 전작 '마녀'에서도 '귀공자'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한 바 있었다.

"사실 캐릭터의 이름이 같다는 건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마녀'의 '귀공자'와, 우리 영화의 '귀공자'는 다른 인물이었으니까요. 세계관도 다르고 캐릭터도 달랐어요. 하지만 영화 제목이 '슬픈 열대'에서 '귀공자'로 이름이 바뀌고 나니 고민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마녀' 속 '귀공자'와 연관 지어 생각하시면 어쩌지? 아찔하더라고요. 하하하. 워낙 훌륭한 배우('마녀' 속 '귀공자'는 배우 최우식이 연기한 바 있다)가 해낸 데다가 팬들이 그런 세계관이나 연관성을 기대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 했어요."

김선호는 '귀공자'에 이어 차기작인 '폭군'도 박훈정 감독과 함께한다. 전작의 감독, 배우가 연달아 함께하는 건 드문 일이기도 했다.

"부담은 없어요. 배우 일을 시작하면서 '다음에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임해왔어요. 박훈정 감독님께서 작품을 제안해 주셨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또 부득이 작품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니 함께 하기로 한 거죠. 전작보다 더욱 가깝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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