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유인호 정치부장, 정리=장한지 기자] "정무직 공무원의 임명 여부를 국회가 결정하는 것은 권력분립에 반합니다. 그것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국내 형사법계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이완규 법제처장(62·사법연수원 23기)은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이 처장은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본지와의 대담을 통해 국회가 공무원을 추천하는 것은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에 상충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 처장은 야당이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이 반년 가까이 임명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는 "추천은 추천일 뿐, 국회가 추천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명백히 밝혔다.
이 처장은 거대 야당에 대해서도 할말은 한다. 검사 출신의 이 처장이 법조계 안팎에서 '미스터 쓴소리'라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가 생방송으로 진행한 2003년 3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평검사 대표로 참여해 "정치권으로부터 영향력이 수없이 들어왔다"고 지적한 일화가 유명하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논의 당시에는 검찰 지도부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40년 지기' 윤석열 대통령도 그의 쓴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윤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했을 때는 "인사 제청은 누가, 언제 했는지 의문"이라고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며 23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났다. 하지만 그와 윤 대통령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당시 징계를 당하자 그는 법률대리인을 자처했다. 이 처장이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을 맡은 것도 당시 권력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스터 쓴소리'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처장은 "대통령제에서 국민으로부터 국정운영권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이라며 "정부의 정책을 수립하는 정무직 공무원의 임명권을 국회에서 가지는 것은 권력분립에 반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임명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법률상 '추천'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국회가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이므로, 국회가 추천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무조건 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국회가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경우 헌법상 충돌이 발생한다는 논리도 펼쳤다.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정은 이른바 '민주적 정당성'이라고 지칭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사람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지만, 정무직 공무원처럼 국민이 선출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통령 등 직접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기관의 임명과 그 통제하에 놓여 있어야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처장은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를 이끌고 국정을 운영할 책임을 지므로 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 받는다"라며 "그런데 국회가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행정부 공무원 임명권과 충돌해 권력분립 원칙 위반의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처장의 법제처는 지난 6월 글로벌 스탠더드와 차이를 보이는 '코리안 나이'부터 없애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반기에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신속한 입법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 처장은 "입법 절차에 관한 소요 기간을 굉장히 단축시켜 줄 수 있다"며 "여야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 위주로 빨리 통과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이 처장과의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입법 추진 현황은 어떻게 되나.
"정부 출범 이후 올해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계획된 정부 추진 법안은 총 367건이다. 그중 57.3%인 211건은 이미 국회에 제출됐고, 나머지 156건은 입법절차를 거쳐 연내 제출할 예정이다. 올해 국회 제출 예정인 주요 법안으로는 적극적인 출산‧육아 지원을 위해 '난임치료휴가 지원 확대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개편'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상권발전기금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지역상권법', 해마다 되풀이 되는 지하공간 침수 방지를 위해 '수방기준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자연재해대책법'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시급한 법안은 무엇인가.
"최근에도 청주 오송에서 침수피해가 있었다. 재난 및 민생‧안전과 관련한 법안이 빨리 정비돼야 할 것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정부가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다주택자 취득세 완화'를 담은 '지방세법'이 대표적이다. 또 이태원 참사 때는 주관자가 명확하지 않은 행사에 대한 제도상의 공백이 있었다.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국회에 제출됐는데, 장기적으로 계류된 상황이다.
지금 교사들이 교원의 지위 회복을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든 이 더위와도 많은 교사들이 싸우고 있는데 교권보호를 위한 '교원지위법'도 정기국회 때 통과됐으면 좋겠다. 이번 정기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가 될 것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총선이고 그때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우려가 많다. 이번 국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정기국회 때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정부가 입법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활한 입법 추진을 위해 법제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정부가 컨트롤타워이고 실질적으로 제출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소관부처다. 법제처는 이번 정기국회를 대비해 정부입법계획, 국정과제 입법계획에 따라 올해 추진 예정인 주요 법안을 신속히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 계류 중인 주요 법안은 국회를 최대한 통과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하려고 한다.
국회제출 예정인 법안은 정부입법 소요기간을 대폭 단축해 신속히 제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그리고 국회에 계류 중인 주요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위해 법안별 국회심의 지연사유를 분석하고, 그 유형별로 처리전략을 마련해 국회 심의를 지원할 것이다. 특히 부처 이견으로 국회 심의가 지연되는 법안은 법제처 정부입법정책협의회를 통해 신속히 이견을 조정해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
-2023년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출 중소기업 대상 수요조사를 통해 수출 및 해외경제활동에 필요한 해외법령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계획과 현재까지 성과는.
"고액의 법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영세‧중소기업의 수출 및 해외 경제활동을 돕기 위해 해외 법령정보를 번역해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수출기업과 현지진출 기업 대상으로 해외 법령정보 수요를 집중 발굴한다는 계획 하에 중소기업중앙회, KOTRA 등 166개 유관기관을 통해 수출 중소기업 대상 해외 법령정보 수요 조사를 실시했다. 수요조사 결과 46개 중소기업에서 베트남,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37개 국가에 대해 136건의 신청을 제출했고, 올 하반기 안으로 법령 번역본을 제공할 예정이다.
더불어 K-콘텐츠의 세계적인 수요 증가에 대응해, 문체부와 협업해 K-콘텐츠 해외 진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세계 콘텐츠 시장의 법‧제도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미국, 태국 등 콘텐츠 기업의 해외 진출 수요가 많은 9개 국가 법령정보를 수집 및 번역하고 필요한 감수를 실시해 문체부의 해외 비즈니스 지원 플랫폼을 통해 제공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킬러규제 혁파'를 강조하고 있다. 규제개선과 관련해 법제처가 하고 있는 역할은.
"법제처는 우리나라 신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각종 규제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법령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먼저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른 네거티브 규제전환을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9개 법령의 정비를 올해 상반기에 완료했다. 또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신속하게 출시될 수 있도록, 규제샌드박스 승인 절차에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내용으로 규제샌드박스 6개 법률 정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존에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신제품·서비스와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에는 대폭 간소화된 승인 절차가 적용돼 종전보다 2~3개월 단축된 2개월 이내에 승인받을 수 있게 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한 규제완화 방안이 있나.
"우리나라 경제의 저변을 지탱하는 중요한 주체면서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 소상공인이다. 이러한 소상공인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다. 법제처는 코로나19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소상공인의 영업활동에 부담이 되는 법령을 발굴해 정비하고 있다.
먼저 소상공인들이 사업의 영세성이나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과중한 제재처분을 받아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고의‧중과실 없는 소상공인의 위반행위에 대해 제재처분의 감경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으로 법령정비를 추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총 109개 법령의 정비를 완료했다. 또 소상공인이 일시적으로 영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기준을 갖추지 못하게 된 경우 행정제재 처분을 유예해 주는 법령 일괄정비를 추진해 3분기 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청년을 지원하는 법령정비 계획도 있나.
"구직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세대에 공정한 도약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청년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법령정비를 추진했다. 올해는 청년의 경제적 조기 자립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미성년자 등의 응시를 제한하는 국가자격시험에 대해 성년이 되기 전이라도 미리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정비를 추진해 '공인노무사법' 등 8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6월 28일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됐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국식 나이 사용 관행이 변화될 수 있을 거라고 보는지, 법 시행에 따른 기대효과는.
"만 나이 통일법은 국제적 표준 나이 계산법인 '만 나이'로 법적·사회적 나이 기준을 통일해서, 그동안 나이 기준 혼용으로 불필요하게 발생했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지금은 익숙한 우측 보행의 경우에도, 2009년 사회적 캠페인을 시작으로 이어진 법령 개정을 통해 80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관행을 국제적 기준에 맞게 변경한 사례다. 만 나이 또한 우리 사회에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다소 시간은 걸릴 수 있겠지만, 국민의견조사 결과 등 국민 공감대가 상당히 높게 형성된 사항임을 고려할 때 점차 익숙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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