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업계는 이 같은 사전규제가 산업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최근 초거대 인공지능(AI) 대전이 격화되면서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도 간단치 않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인터넷 기업을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박성호 회장은 규제 정책의 변화를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취임 초 내세웠던 '자율규제'를 중심축으로 플랫폼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지난 2021년 취임해 올해 초 연임 첫해를 맞았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2년 전 취임 당시와 비교해 IT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했다고 보는지.
"취임 당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라 국민들이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하는 계기가 됐고,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플랫폼이 주목받았던 시기였다. 다만 이러한 성장세가 최근에는 한풀 꺾였다. 또 초거대 AI의 등장으로 우리 플랫폼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생긴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플랫폼에 대한 규제 논의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다만 올해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자율규제'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올 한 해는 업계가 자율규제를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 시기고 그런 점에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플랫폼 규제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들어섰음에도 규제는 과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나 국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을 법으로 하나하나 다 규제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플랫폼은 시장 상황이 계속 바뀐다. 어제 정한 규제가 오늘은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법과 현실이 계속 괴리를 갖게 되는데 이를 조정하는 것이 바로 자율규제라고 생각한다. 당사자들끼리 협의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다가 정 안 되면 사후적으로 규제를 하는 것이 맞다.
2019~2020년 발의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에는 여러 플랫폼 규제 관련 내용들이 담겼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업계에서 이번에 발표한 자율규제안이 규제 범위도 더 넓고, 준수해야 할 내용도 엄격하다. 자율규제로 인해 기업이 어떠한 영역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더 넓어지는 것이다. 자율규제가 잘 안착된다면 오히려 실질적인 효과가 더 좋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예를 들어 보자. 대표적인 플랫폼 규제 법안인 온플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플랫폼이 플랫폼에 입점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를 작성해 어떤 권리·의무가 있는지 확실히 알게 하라는 점, 플랫폼에서 검색할 때 어떤 원칙하에서 검색 결과가 노출되는지 공개하라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플랫폼 입점업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해 플랫폼별로 업체들에 상세하게 설명하는 자리들을 이미 갖고 있다. 단순히 문서를 준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핵심 사항들을 별도로 표시해 입점업체들에 구체적으로 알린다. 후자는 주요 플랫폼별로 검색·추천 순서 결정 기준을 어떠한 원칙하에 정하는지 공개하기로 했다. 물론 이를 공개한다고 해도 여전히 플랫폼이 AI 알고리즘에 인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이 공정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 바로 플랫폼 자신이다."
-자율규제가 법적 강제성이 없는 만큼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나 규제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가령 게임업계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를 통해 수년 전부터 게임사들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됐다. 결국 올해 2월 이를 법으로 강제한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한다. 다만 자율규제의 토대를 올린 데 있어 GSOK의 역할은 중요했다고 본다. 2015년 업계 주도적으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시작됐고 빠르게 정착했다. 만일 처음부터 법적 규제를 했으면 기업들은 법을 우회하기 위한 다른 방식을 만들고, 이를 막기 위해 또 법률을 개정하는 악순환이 지속됐을 것이다. 반면 자율규제를 하면 각 업체들이 다른 업체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한 업체가 대놓고 선을 넘기가 어렵다고 본다. 물론 '모럴 해저드'에 대한 지적은 일리가 있고, 그런 것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자율규제의 점수를 매기자면 사실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일 정도로 높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애초에 우리 사회가 자율규제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논의가 성숙해지고 있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공정위가 EU의 DMA 규제 모델을 주시하고 있다. 정부가 계속해서 플랫폼 규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현상에 대한 선입견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플랫폼이 사회를 점령할 수 있고, 그러므로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논의인데, 한국에서도 플랫폼이 가파르게 성장하다 보니 규제와 관련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규제 패키지 법안들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U가 강력한 플랫폼 규제를 시행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이미 EU 시장의 80~90% 이상을 미국 플랫폼이 점령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플랫폼 측면에서 보면 유럽은 미국의 '식민지'다. 식민지는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결과물이 DMA다. 이러한 규제를 토대로 자국 플랫폼을 육성하려는 것이 EU의 목적이다. 반면 한국은 잘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유럽과는 다르다. 우리가 정책을 수립하면서 해외 사례를 많이 참조했지만,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지위에 이미 올랐다. 오히려 플랫폼 규제 방향을 선도할 수도 있다.
독과점 플랫폼 규제를 한다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시장이 이커머스 시장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네이버, 쿠팡, G마켓 등을 비롯해 10여개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고 점유율도 많아야 10~20%대다. 규제 당국에서 경쟁 제한성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이곳이야말로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장이다. 아마존이 과반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유럽과는 엄연히 다르다. 밭이 다른데 똑같은 품종을 심으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으냐."
-이러한 사전규제 방식이 문제라고 보는 이유는.
"결국 한국의 플랫폼 규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들을 포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구글·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의 글로벌 매출과 비교하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새 발의 피다. 동일 선상에 두고 묶을 수 없다. 한국 사회 관점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욱이 플랫폼 분야는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획정의 기준, 경쟁 제한의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측정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단지 외형상 몸집이 커 보이기 때문에 규제 대상으로 지정한다는 인상이다. 규제 대상을 정할 때 주로 시가총액, 매출, 거래액, 이용자 수 등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직원이 20명 남짓 되는 기업이 만든 플랫폼도 월간 이용자 수가 수백만, 수천만이 될 수 있다. 또 네이버가 주도하고 있다는 검색 점유율도 구글 등에 의해 흔들리고 있고, 카카오톡 역시 다들 쓴다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언제든지 대세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이 굉장한 위기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AI 수준은 상상 이상으로 높고, 기술 개발을 통해 더욱 앞서갈 수도 있다. 한국도 네이버 등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격차가 아직 크다고 여겨진다. 기술 수준도 기술 수준이지만 AI 인재 양성 풀, 초거대 AI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의 수집량 등에서 상상 초월의 격차가 난다. 당장 미국은 단일 대학에서만 1년에 AI 관련 인력이 1000명 가까이 나오는 걸 봐도 그렇다. 애초에 운동장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AI 인력 양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고, 정부 차원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기업들에 공급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력 양성의 경우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가령 김대중 정부 시기 IT 붐이 일었을 때 병역 특례 전문연구요원을 적극적으로 확대했었는데, AI 전공자에 대해서도 문과·이과 통틀어서 이 같은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우수 인력 모집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규제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빨리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네이버·카카오 위기론이 대두된다. 유튜브가 국내 이용자 수를 빠르게 늘리는 등 해외 기업들이 만든 서비스가 국내 진출을 지속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해외 시장 개척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라 성장 가능성이 너무 제한됐다.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에 노하우를 전수해 주면서 현지 조인트벤처를 만드는 등 해당 국가와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모든 것을 본인들이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을 잘 펼친다면 구글이 장악한 글로벌 시장을 조금이라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점령하지 말고 함께 시장을 키워 주면서 가야 한다. 또 AI와 같이 중요도가 매우 높은 시장에서는 정부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 민관 합동 체계를 이룰 필요가 있다. 기업이 혼자 하기는 어렵다.
사실 지금 네이버와 카카오만 해도 쉽게 나올 수 있는 기업은 아니었다고 본다.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한다. 사람들이 한국에도 구글 같은 기업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얘기를 많이 하지만, 네이버와 카카오도 더 잘해서 더욱 커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질책도 필요하겠지만, 격려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플랫폼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사회적 책임도 많이 늘어날 것이고, 실제 최근 몇 년간 그래왔다. 이에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원래대로라면 공적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정부고 기업은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이 그저 개별 기업 측면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기업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 어디까지 기업이 공적 영역을 책임져야 할지 논의를 많이 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과도하게 기업에 공적 의무를 부과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기업 경쟁력도 위축되겠지만 한국 플랫폼 투자에 염두를 두고 있는 해외 자본들도 투자를 꺼릴 수 있다. 기업은 성장 가능성으로 인정받는 존재인데 과도한 의무로 인해 이러한 성장 가능성이 작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도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해 한국 플랫폼들을 자식 같은 시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지금도 꾸준히 커 가면서 여러 기여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효자·효녀가 될 수 있다. 계속 기를 죽여서는 안 된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現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現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
▷現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現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現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前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
▷前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
▷前 네이버 대외협력임원
▷국민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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