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격세지감 한·중·일 경쟁 …. 원칙과 명분 그리고 비장의 카드로 돌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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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입력 2023-10-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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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이웃 국가의 개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흔히 이웃에 대한 정의를 지리적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안보나 경제에 더해 심리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할 만큼 이웃에 대한 정의가 다양화되는 추세다. 최근엔 ‘친구(Friend)’와 ‘적(Enemy)’이라는 단어를 조합한 ‘프레너미(Frenemy)’라는 합성어까지 통용된다. 친구와 적이 고정되어 있고, 수시로 바뀌고 있는 현상이 쉽게 목격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두 강대국이 서로 편을 가르는 상황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드러난다. 불편하거나 적대적인 이웃보다 편하고 우호적인 이웃을 많이 둘수록 행동하는 데에 제약 요인이 적어지고, 국익을 챙겨나가는 데 유리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위치 선정을 잘못해 실패하는 국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지리적 이웃인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늘 도마 위에 오른다. 늘 보면 양국에 대해 동시에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고 시기에 따라 한쪽으로 편향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척에 있는 이웃이지만 심리적 거리감은 매번 상이하다. 경제적 혹은 안보적 손익 계산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요즘에는 정권의 색깔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시적 국민적 감정 충돌로 인한 골의 깊이가 장기간 계속된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는 이처럼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친소 관계가 결정되고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일시적 충동이나 정치적 계산으로 이웃 국가 간의 근간을 헤치는 순진하고 무모한 행위들이다.
 
최근 국내 여론을 보면 중국에 대해서는 반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는 반면에 일본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멀게는 사드 보복, 가깝게는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절정에 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국의 경제적 추격에 대한 위기감이 덜 했고, 중국 내수시장에서 한국 상품이 잘나가던 시절이라 당연히 양국 관계가 썩 좋았다. 때맞추어 중국인의 한국 관광이 절정이었고, 한국 관광객의 중국 유명 관광지 방문도 줄을 이었다. 한·중 관계가 이토록 좋을 수 없으며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강했다. 불과 수년 전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아득한 과거로만 느껴질 정도로 격세지감이다. 이에는 중국인이 우리를 멸시하는 여러 언동과 행위들이 뒤따르기도 했다.
 
한편 지난 정권이 반일(反日) 기치를 확실히 내걸면서 정치적으로 일본과 사사건건 대립하였다. 관계가 극도로 악화, 양국 국민의 거친 감정 대립으로 확전이 되면서 일본 상품 불매 운동과 일제(日帝) 청산과 같은 살벌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마치 루비콘강을 건너 다시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섬뜩함이 감지될 정도였다. 정권이 바뀌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고 있다. 한류가 일본에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본 상품의 국내 판매도 호조세다. 일본 관광지에 한국인이 넘쳐날 정도로 바뀌었다. 찬 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해진 중국에 대한 국민적 감정과 달리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훈풍이 분다. 냄비에 죽 끓듯이 변덕스러운 국민 정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기가 찰 노릇이다.
 
한·중·일 관계, 과거와 같은 잣대로는 해결되지 않아
 
문제를 인식하고 시정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이런 불안정하고 불균형적인 시각에 대한 전면적인 손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렇게 사는 방법 말고는 다른 묘안이 없다. 우리 내부에 중국이나 일본에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는 절름발이 전문가 집단이 이를 자초하지나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웃집 마실 다니듯이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 하면 상대로부터 신뢰를 잃고 궁극에는 괄시와 천대를 받을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이 부러워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없고 한물가거나 쓸모없는 누더기 패만 갖고 있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일시적 선동이 난무하더라고 흔들리지 않는 국가의 원칙과 명분, 그리고 중심축이 견고해야 한다.
 
얼만 전까지만 하더라도 2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한국이 일본을 뒤따르고, 중국이 한국을 따라온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했다. 지금도 이를 주장하면 버스 지난 다음에 손을 들거나, 우물 앞에서 숭늉 찾는 꼴이다.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우리가 일본은 앞서는 것이 많듯이 중국이 우리나 중국을 앞서고 있는 것이 수두룩하다. 빠른 추격자가 아닌 모두 대등한 경쟁자 혹은 우월한 선도자로 전환하고 있는 판이다. 경제적 관계도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상호보완 적에서 상호경쟁적으로 바뀐 지가 한참 되었다. 과거의 잣대로 한·중·일 간에 주판알을 튕기고 방정식을 풀면 전부 틀린다. 지금 세대나 미래 세대가 오판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이웃 관계의 도식을 물려주어야 한다.
 
3국 간 무역 관계만 보더라도 중국 상품은 한국 시장을 호시탐탐 노린다. 반도체만 빼면 한국이 무역적자다. 심지어 한국 기업은 중국 투자 진출을 꺼리지만, 오히려 중국 기업이 한국 진출을 기웃거린다. 유사한 현상은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 시장 진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디지털화에 뒤떨어진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첨단 디지털 제품의 반 박자 빠른 일본 시장 노크도 눈에 띈다. 종래에 우리가 공식처럼 전개했던 무역이나 투자의 패턴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양쪽에 두고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특유의 소프트파워를 길러야 한다. 기울어지면 위험하고 팽팽하면 살 수 있는 공간이 커진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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