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까치·구도'...열쇳말로 감상하는 장욱진의 화업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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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3-1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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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 내년 2월 12일까지

  • '불교적 세계관'·'무상' 등 작품 세계 연결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51년 작 '자화상'과 1973년 작 '자화상'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60여 년 장욱진 화백의 화업 인생을 총망라한 뜻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공동주최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내년 2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와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을 한 자리에서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화상’·‘까치’·‘불교적 세계관’ 등의 열쇳말을 통해 연결된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30대 장욱진과 50대 장욱진이 그린 ‘자화상’
 
‘자화상’이라는 같은 제목의 두 작품은 시기별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장욱진은 30~40대 장년기를 거치며 명도와 채도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주목도를 높였다. 40~50대 중년기에 이르면 실존의 절대적인 형상으로서 뼈대나 윤곽만으로 대상을 조형화시키며 기호화된 형태들을 그린다.
 
1951년 그린 ‘자화상’은 6·25전쟁 이후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장욱진이 종군화가로 복무 중에 잠시 고향인 충남 연기군(지금의 세종시)에서 머물던 시기 그린 작품이다. 방황에서 벗어난 그는 당시 작품 의욕이 넘쳐 “미친 듯이 그리고 또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이 파란 하늘과 노란 보리밭이 대조를 이루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 끝에 장욱진이 서 있는 풍경을 그린 반면, 1973년 작 ‘자화상’은 모든 배경을 생략하고 오로지 사람의 형상, 즉 얼굴, 몸, 팔다리를 필선으로 마감한 인물화다.
 
최소한의 붓질을 구사하되 신체를 동그라미와 직선의 도형으로 간략하게 묘사했다. 그림 속 장욱진은 직립 상태가 아니라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둔 채 삐딱하게 서 있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58년 작 '까치'와 1961년 작 '새와 나무'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장욱진이 사랑한 분신 ‘까치’
 
‘까치’는 장욱진에게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평생 그린 유화 730점 중 60%에 까치가 등장했을 정도다.
 
‘나무’는 그의 온 세상을 품는 우주였으며,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로서 결국 모든 것이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1958년 작인 ‘까치’는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화면의 질감(마티에르)을 만들어냈다.
 
날카로운 필촉에서 까치의 까랑까랑한 울음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작품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까치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장욱진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 출신 화가들이 개최한 ‘2·9 동인전’(1961)에 ‘새와 나무’를 출품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시절 직장 동료이기도 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원룡 교수가 전시회에 찾아와 당시 한 달 월급인 2만 환을 봉투째 놓고 구입해 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별칭인 ‘야조도(夜鳥圖)’로도 유명하다. 이는 그림을 구입한 김 교수가 지은 제목으로 ‘밤에 나는 새’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화면의 주조는 표현할 수 없이 밝고 깊은 독특한 푸른색이고, 그것이 새의 흑색과 잘 조화해서 사람을 고요한 환상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평했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84년 작 '마을'과 1988년 작 '언덕 위의 가족'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장욱진 작품 감상에 중요한 ‘구도’
 
장욱진의 작품을 감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구도다.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대칭 구도’다. 이는 1984년 작 ‘마을’을 보면 잘 나타난다.
 
세로축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언덕, 집, 소, 개, 사람이 아래로 이어지고, 좌우로 해와 달, 나무와 화분이 쌍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대칭 구도는 안정적 균형미를 주지만 단조로울 수 있다. 화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로축에 있는 소와 개, 사람의 방향을 교차로 배치했으며, 달의 형태와 색, 나무 위 까치, 화분의 형태와 색을 서로 다르게 표현했다.
 
1988년 작 ‘언덕 위의 가족’은 경사진 비탈길 위에 나무 한 그루와 세 가족을 그려 넣은 풍경화다.
 
작가의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탈길에 서 있는 가족이 한쪽으로 쏠려 불안한 자세로 서 있지만, 우람한 나무가 이들을 든든하게 감싸면서 안정감을 준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70년 작 '진진묘'와 1979년 작 '여인상'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작품으로 만나는 불교적 세계관
 
이번 전시에서는 장욱진의 불교적 세계관을 만날 수 있는 작품도 볼 수 있다.
 
1970년 작인 ‘진진묘’는 이순경 여사의 법명(法名)으로, 장욱진이 직접 제목을 붙인 작품이다.
 
장욱진은 명륜동 집에서 기도하던 여사의 모습을 지켜보다 ‘화상(畵想)’이 떴다며 갑자기 덕소 화실로 향했고, 추운 곳에서 일주일간 오직 제작에만 몰두했다. 작품을 완성한 장욱진은 그 길로 부인에게 달려와 득의(得意)의 작품이라며 그림을 건넸다.
 
‘진진묘’는 장욱진의 첫 불교 관련 작품으로, 단순히 기도하는 부인을 그린 초상화의 성격뿐만 아니라 불보살상을 떠올리게 하는 종교성이 짙은 그림이다.
 
1979년 작인 ‘여인상’에서 볼 수 있는 여인의 손은 마치 불교의 상품상생(上品上生), 수인(手印)과 같은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82년 작 '나무와 가족'과 1990년 작 '밤과 노인'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마지막 순간 그린 ‘삶과 죽음’
 
장욱진이 1970년대 이후 남긴 노년기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수안보 시기부터 용인(신갈) 시기까지의 작품들이다. 장욱진은 평생 730여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가운데 80%에 달하는 580여점이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졌다.
 
실제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그림의 색층은 더욱 얇아지고, 수묵화나 수채화처럼 묽은 물감이 스며드는 듯한 담담한 효과를 유지한다.
 
이처럼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킨 그의 유화는 ‘금강경’의 핵심 사상인 ‘무상(無相)’으로 집약된다.
 
1982년 작 ‘나무와 가족’에서 장욱진은 나무를 그릴 때 붓끝을 갈라지게 해 그리는 방법인 파필(把筆)을 시도했다. 붓이 멈춘 자리에는 물감이 엉켜붙은 독특한 얼룩이, 붓질이 빠르게 지나간 자리에는 붓끝의 갈라짐과 삐침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여백이 연출됐다.
 
1990년 작인 ‘밤과 노인’은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그린 그림이다.
 
왼쪽 상단에는 흰 도포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인 혹은 도인이 있는데 장욱진의 모습을 상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화가가 사랑했던, 그리고 그의 일부로 표현되는 대상인 집, 까치, 나무, 아이가 있다. 노인의 표정은 세속에 초탈한 듯하고 만사를 관조하는 모습이다. 자신이 사랑한 것은 저 아래에 있지만,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기에 나의 마음이 평화롭다고 말하는 듯하다. 바라볼수록 먹먹해지는 작품이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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