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금융그룹이 금융당국 수장들과의 회동을 앞두고 상생금융안을 어느 정도로 내놔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그룹 회장이 직접 금융당국 수장을 만나러 가는 만큼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4분기 금융권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변수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금융그룹 회장단은 13일 김광수 은행연합회장과 만나 상생금융안과 관련해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취소됐다. 16일 금융당국과의 만남을 앞두고 상생금융안 규모를 조율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이 이자이익을 두고 ‘돈 잔치’ 등 강한 어조로 비판하면서 금융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서민금융 공급 확대를 약속한 뒤 하나은행(3일)과 신한금융그룹(6일)이 차례로 1000억원, 1050억원 규모의 상생금융안을 내놨지만 금융당국의 반응은 시원찮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금융권이 합심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에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국민들이 은행에 갖는 불만들이 꽤 있다고 느끼는데, 왜 이런 문제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은행들이) 반도체·자동차 업계와 비교해 어떤 혁신을 했길래 60조원의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은행권을 압박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1000억원 수준의 상생금융안으로는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은행과 신한금융이 상생금융안을 발표했을 당시 KB·우리·NH농협 등 다른 주요 금융그룹도 상생금융 대열에 빠르게 합류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에서 싸늘한 반응을 보낸 이후 후속 발표가 없는 상황이 금융권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이자이익을 내놔야 하지 않겠냐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다만 이자이익이 줄어들면 연쇄적으로 배당금과 대손충당금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만큼 주주환원·자산건전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정부의 개입을 ‘관치금융’으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있다. 은행권이 최근 4년 동안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사회공헌사업에 매년 1조원 이상 사용했고, 3분기 경영성과도 부진한데 정부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5대 금융그룹의 올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15조649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은행들도 자산건전성 강화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늘리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여기에 정부 정책에 발맞춰 상생금융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려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안에 ‘은행 독과점 완화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일 국내 은행의 독과점 시스템을 경쟁이 되도록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움직임이다. 정치권·금융권에서는 저신용자나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신파일러’를 위한 금융 인프라를 확충하고,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해 시중금리를 인하하는 방안이 담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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