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불평등 문제가 오늘내일 해결할 수 없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불평등은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보니 사회 통합도 쉽지 않다. 하지만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숙한 사회적 인식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시장경제를 허물지 않는 선에서 불평등에 따른 차별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회 갈등 원인, '빈부격차'"···또 다른 차별 불러온다
21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국민 중 25.5%는 '우리 사회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 '빈부격차'라고 답했다. 사회 갈등 원인을 빈부격차라고 꼽은 사람 비중은 2019년 18.0%에서 2020년 22.2%, 2021년 26.9% 등으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통합위는 우리 사회의 경제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다고 자평하면서도 여전히 빈부격차를 갈등 요인으로 느끼는 국민 인식 간에 차이가 크다고 진단했다.세계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자산 불평등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내놓은 '세계불평등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6.5%를, 전체 부의 58.5%를 차지한다고 평가했다. 반대로 하위 50%는 소득과 자산에서 각각 16%, 5.6%만 차지했다.
이런 소득·자산 불평등 문제가 가장 우려스러운 건 미래 세대에게 불평등을 대물림하면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산 불평등에 따른 경제적인 불평등 외에도 교육, 주거, 환경 등 다른 기회의 불평등 또는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먼저 자산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부동산을 보면 서울과 지방 간 집값 차이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적게는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가격이 벌어졌다. 이렇게 벌어진 자산 격차에 따라 소득·자산 상분위 가구는 서울로 가고, 저분위 가구는 서울 밖으로 밀려났다. 실제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는 우리나라 전체 증여세액 중 3분의 1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도 유력 지역으로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렇게 벌어진 자산 격차는 교육 불평등을 불러온다. 현재 한국 입시에서 사교육 영향력은 절대적인데 강남 등에 위치한 자산 상분위 계층은 비싼 고액 사교육을 감당할 수 있다 보니 유명한 '학군'도 형성되곤 한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고액 사교육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렇듯 사교육 없이 지방에 사는 사람과 고액 사교육을 받은 서울 사람 간에 벌어진 개인 역량 차이는 균등한 기회를 받아도 공평한 기회로 볼 수 있느냐고 학계에서는 지적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처럼 꼭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개인 역량을 발휘해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기회를 찾아볼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입시 경쟁력에서 사교육이 중요해졌고, 이는 서울과 지방 간 격차 또는 자산 불평등에서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사례"라고 말했다.
또 자산 불평등은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취업과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지는데 양육·교육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젊은 세대가 결혼 행위로 느낄 부담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한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 보고서에서는 2017~2019년 30대 중·후반 남성 중 소득 상위 10%는 결혼 경험이 91%였다. 하지만 하위 10%는 결혼 경험이 20대 중·후반에서 8%에 머물렀고 40대 중반을 넘어가도 27%에 그쳤다.
특히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묻는 말에 긍정적인 대답은 2009년 48.3%에서 2021년에는 29.3%으로 낮아졌다.
"'불평등한 사회=병든 사회'···사회안전망 밑받침해야"
영국 역학자인 리처드 윌킨슨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는 '불평등 트라우마'를 통해 사람이 불평등한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병들어 가는지 보여줬다. 그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불평등이 심화하면 소득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강해진다고 봤다. 이는 대다수 국민에게 사회 불안과 스트레스를 주고, 사회적 접촉과 공동체, 그리고 공감이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강한 정신적인 압박을 받아 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전문가들은 이렇듯 자산 불평등이 불러올 수 있는 경제·사회문제가 더 불거지기 전에 안전한 사회보장 제도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는 '자산가격 변화가 경제적 불평등과 대외경제 변수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연구보고서를 통해 심화하고 있는 부(富)의 불평등이 거시경제 성장까지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의 불평등이 국내 소비를 위축시키고, 저소득 집단의 소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1분위 소득집단의 소비 안정을 위한 정책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보고서 저자인 윤덕룡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는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 정책을 통해 성장에 우호적인 경제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등 금융 소득에 대한 조세 누진성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복지 지출 강화와 같은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 부동산 시장 가격 안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화와 같이 소득 불평등을 높이는 구조 변화가 지속되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는 북유럽 국가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사회를 받치는 경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면서 "이때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주관적인 만족도가 대체로 높게 나타나고 행복한 나라로 표현이 된다. 이런 나라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적인 안전망 제도가 잘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유럽 사회 경제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시선도 있다"면서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민간에서 시장경제 원리가 자유로운 질서 내에서 순환하고, 이와 동시에 사회적인 안전망 시스템을 통해 소득 재분배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많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공공시설·서비스에 많은 돈을 투자해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차별 없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하 시그널을 최대한 신중히 내비쳐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항용 한국외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주택시장을 보면 안정적인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40·50세대보다 20·30세대 부채가 많이 늘었다"며 "이는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 등 부채를 중심으로 증가했다. 젊은 층의 공격적인 투자 행태가 더욱 확산되지 않도록 또 우리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부채의 변화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신호를 내비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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