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후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건설사들이 잔금 유예, 할인 분양 등 혜택을 제공하면서 기존 입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할인분양 가구의 입주를 막고 관리비 등을 차등 부과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위를 넘어 소송에 나서기도 하는 등 미분양 단지를 둘러싼 갈등 양상이 곳곳에서 이어지는 모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3월 입주가 시작된 대구 동구 안심뉴타운 '호반써밋 이스텔라'는 지난달부터 최대 9300만원 수준의 할인분양이 진행되면서 기존 입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4억2000만원~4억8000만원대로, 최초 분양가의 약 20% 수준의 할인이 적용된 셈이다.
시행·시공을 맡은 호반그룹 계열사 호반산업은 미분양 가구에 대해 ‘분양가 15% 납입 후 잔금 85% 납부 5년 유예’ 또는 ‘잔금유예 없이 선납부할 경우 선납할인으로 분양가 7000만~9300만원을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약 20가구가 해당 조건으로 계약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입주민들은 할인분양을 받은 신규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용 관리비와 주차비 등을 영구적으로 20% 가산율을 적용해 차등 부과하는 한편, 할인분양 입주 가구의 커뮤니티 시설 사용을 제한하거나 입주 시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500만원씩 받는 방법 등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호 호반써밋 이스텔라 할인분양대응 입주민 모임 대표는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 찬반투표를 진행, 의결을 통해 해당 내용으로 관리규약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호반산업이 중재·협의안 등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입주민 모임은 이날 항의 메시지를 담은 시위트럭을 호반그룹 본사에 보내기도 했다.
이에 호반산업 측은 "할인분양이 아니라 계약조건 완화한 것으로 기존 입주민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부분으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미분양이 심화하면서 지방을 중심으로 비슷한 갈등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 동구 효목동 동대구푸르지오브리센트는 지난 2021년 12월 청약 이후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지난달부터 분양가 10% 수준인 약 5000만원 할인분양을 진행해 기존 계약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작년 1월 입주를 시작한 전남 광양 동문 디 이스트는 기존 입주민들이 할인분양 가구에 주차요금 50배, 커뮤니티 및 공용부시설 사용 불가, 엘리베이터 사용료 500만원 등을 요구하며 마찰을 빚었다. 현재 이 단지 분양은 잠정중단된 상태다.
121가구 공매가 진행된 대구 수성구 빌리브 헤리티지 수분양자 25명은 지난 8일 신탁사와 시행사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매매계약 당시 할인분양 등으로 분양가가 변경되면 기존 계약자에게도 소급 적용한다는 특약을 걸었다는 이유에서다. 신탁사 측은 공매는 계약변경(할인분양)이 아니라 손해배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계약 당시 별도 약정이 없었다면 할인분양을 했다고 기존 수분양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줄 의무는 없다는 것이 판례"라며 "입주민들끼리 신규 입주를 저지할 권한은 없으며, 관리비 등 차등부과 수준이 과도할 경우 관리규약을 정했어도 무효화될 수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고육책’인 할인분양마저 차질을 빚으며 사업비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업황이 안 좋을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준공후미분양은 타격이 커서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할인분양 카드를 꺼내게 되는 것"이라며 "기존 수분양자들에게도 혜택을 주기 시작하면 다른 사업장 입주민들도 요구해오는 경우가 있어 소급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