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개혁 일환으로 추진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빨간불이 켜졌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정책 추진을 위한 동력을 잃었다. 대한의사협회도 의대 정원 증원을 선거 참패 원인으로 규정했다.
22대 총선에서 190석 가까이 차지한 야권의 의료개혁 정책도 주목된다. 한 치 양보가 없는 대치 속에서 야권이 추진하는 정책이 중재안이 될 수 있어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약인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등은 의료계에서 반대해 온 정책이라 의료계·정부 갈등이 의료계·정치권 갈등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협 "증원 추진 중단해야"···정부 "의료개혁 계속"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지난 12일 정부 측 2000명 증원 고수 등 행보가 총선을 참패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김성근 의협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사실상 국민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들어 의료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원점 재검토에 나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총선 이전에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선 의대 증원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의대 증원이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에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다만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 피로감 또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메트릭스에 의뢰해 지난달 2~3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의대 2000명 증원' 찬성 응답은 48%로 집계됐다. '2000명보다 적게 늘려야 한다'는 응답은 36%, '현행 유지'는 11%, '모름·무응답'은 5% 순이었다.
같은 달 12~14일 1002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응답은 47%, 증원 규모와 시기 조정 등 '중재안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1%였다. '현행 유지'는 6%에 불과했다.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한 이유 중에선 '의대 정원 확대'가 23%로 가장 높았다. 다만 의대 증원을 긍정 평가 이유로 꼽은 비율은 전주보다 5%포인트 감소했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자 국민 피로감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총선 참패와 의협 반발에도 정부는 계속 개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 발언에서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는 변함없다"며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4대 과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野 '공공의대 설립' 추진···정치권·의료계 갈등 커지나
정부의 의료개혁이 추진 동력을 잃으면서 야당의 관련 정책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의료개혁 핵심 정책으로 내놨다. 공공의대는 각 지역에 공공의대를 설립해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역의사제는 의료 취약 지역에서 의사를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해 보건의료개혁공론화특별위원회(보건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총선 승리를 기점으로 의료개혁의 주축이 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정부와 의료계 양측 간 강대강 대치로 국민 피해만 점점 커진다"며 "정부는 특정 숫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고, 의료계는 즉각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계는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모두를 반대하고 있다. 앞서 2020년 문 정부는 두 정책을 추진하면서 의대 정원을 10년간 4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의료계 집단 반발로 무산됐다.
이러다 보니 의협은 여당 참패를 '일방적 의대 증원에 대한 심판'이라고 평하면서도 야당 압승에 마냥 박수를 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은 총선 직후 본인 페이스북에서 "마음이 참 복잡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진보 성향인 거대 야당이 더 강한 의료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아주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지금은 정부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인 만큼 민주당 정책에 대해선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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