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뉴스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슈 중 하나가 ‘퇴직 대행’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행업체가 돈을 받고 대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퇴직 처리를 도와주는 일이다. 대인관계 문제 등 정신적인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려고 해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말하기 어렵다’는 이유 하나로 퇴직 대행을 의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신입사원이 자신이 기대했던 업무가 아니라거나 원하지 않는 부서에 배정되었다는 이유 등으로 입사 후 며칠 또는 몇 주 만에 퇴직 대행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뉴스가 일본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것은 직장생활, 특히 대학생의 취직이 가지는 의미나 일본의 취업 문화가 한국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4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일본은 3월에 대학교를 졸업한 전국의 젊은이들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취직해 대부분 4월 1일에 처음 출근한다. 대기업들은 첫날, 대학교 입학식처럼 큰 강당에 신입사원을 모아 놓고 ‘입사식’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사장님 훈시와 입사 발령이 이어진다.
병역의무가 없는 일본에서는 대학생들이 일반적으로 휴학을 하지 않고 입학부터 졸업, 그리고 취업까지 모두가 같은 스케줄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입사가 일제히 이뤄지다 보니 대학생들의 취업 활동도 일제히 이뤄진다. 이때 조금이라도 경쟁사보다 빨리 움직여 좋은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생기는데, 대학생이 학업에 전념할 수 없다는 우려로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채용홍보 활동은 3월 1일부터, 채용전형은 6월 1일부터, 그리고 채용내정은 10월 1일부터 가능하도록 회원사에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룰이고, 실제로는 채용내정이 풀리는 10월에는 내정식이 행해진다. 따라서 채용전형이 풀리는 6월에는 이미 내정자가 나와 최종적인 전형이 마무리된다. 따라서 채용을 위한 공식 홍보활동은 3월이지만 이전에 ‘설명회’나 ‘인턴십’ 등 명목으로 이미 많은 기업에서 채용활동을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일본 대학생들은 3학년 여름이 오기 전에 여름방학 중 가능한 인턴십을 찾으면서 취업활동을 시작하고, 가을에는 기업설명회 등을 다니면서 지원할 회사를 좁혀간다. 4학년 초봄에는 정식은 아니지만 암묵적인 내정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여름 전에 한 군데 정도는 입사 내정이 정해지지 않으면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 된다. 빠른 학생은 3학년 때 입사할 곳이 이미 정해진 경우도 있다. 미리 입사가 결정된 학생은 무사히 졸업만 하면 되기 때문에 졸업 논문 외에는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래서 학생 시절 마지막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다음 해 4월 입사까지 동아리 활동에 복귀해 스포츠 등 취미활동에 힘쓰거나, 여행을 가거나, 영어 공부를 하거나, 간혹 졸업하지 못해 내정이 취소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학점을 챙기려고 하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본의 취업 사정은 대학 성적에서도 한국과 크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학점이 매우 중요한 반면 일본에서는 학점은 크게 영향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취업활동은 3학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학점을 확인하려고 해도 2학년까지밖에 제시할 수 없다. 물론 기업마다 선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서 학점은 어디까지나 판단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학점에 목숨을 거는 학생은 일본에서 보기 드물다.
대학 성적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취업할 때는 서류상 ‘스펙’이나 출신 대학이 한국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채용을 할까? 예전에 내가 한국 대학에 있을 때 일본 기업에 취직하려는 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어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자주 들은 채용 기준은 ‘느낌 또는 직감’이었다. 어느 기업이나 면접을 중요시하고 있어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받은 ‘느낌’이 합격 여부 판단에 큰 근거가 된다고 한다. 학생을 지도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무책임한 기준이 어디 있나 싶었지만 사실 기업이 보기에는 합리적인 기준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동료를 채용하는 것인데 좋은 관계를 맺기 힘들 것 같은 인물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일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할 무렵 취업활동을 경험했는데 지원한 기업마다 모두 면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적은 곳은 세 번, 많은 곳은 다섯 번 면접을 봤다.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 면접, 그룹 면접, 각 부문 관리직급 면접, 인사부 면접, 임원 면접, 이런 식이다. 어떤 곳은 입사 내정을 받은 후에 대학 성적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할 정도로 학점은 졸업 여건이 잘 갖춰져 있는지 확인하는 의미 정도였다. 나는 대학 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은 곳에 취업했고, 떨어진 기업에서도 학점에 대해서 문제시하거나 그것 때문에 불리했던 적은 없다.
한국 대학은 성적이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대평가가 기본인 반면 일본 대학은 대부분 과목에서 교원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만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절대평가가 기본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의무교육도 아닌 고등교육기관에서 한정적인 수의 학생들 중 우열을 가리는 공부가 얼마나 의미 있느냐는 것이고, 기업 등 인재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서는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전문성이란 회사에서 쓸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로 생각해 입사 후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성적이 한국처럼 까다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는 일반 기업에 지원할 때 대학원 출신의 고학력자는 반대로 취업에 불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어중간하게 전문성을 가진 인재보다 흡수력을 갖춘 잠재능력이 뛰어난 학부 졸업자가 선호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고학력 푸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 개인의 능력보다 잠재능력을 중요시하는 만큼 일본 기업들은 입사 후 교육에 공을 들인다. 대기업의 경우 경력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신입사원의 경우 처음 3년 정도는 연수기간처럼 생각하고, 그럴 여력이 없는 기업이라도 입사 후 3년 정도는 OJT(On the Job Training)를 통해 제 몫을 하는 인재로 키우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 회사에서 최소 3년은 근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고스펙의 능력자인지를 판별하려는 한국 기업과 채용 후 장기적인 교육을 전제로 잠재능력을 판별하려는 일본 기업의 문화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일본 기업 문화의 근저에는 바로 ‘일본식 경영’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식 경영이란 연공서열임금제와 종신고용제 등 일본 기업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일본 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채용한 인재에게 큰 투자를 하고 키워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초봉은 다소 낮게 책정되어 있어도 그만큼 교육이라는 형태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인재가 성장해 장기적으로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므로 연령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고, 연령이 낮으면 아직 공헌도는 낮다고 여겨져 급여가 억제된다. 그러나 그것도 초기 투자를 한 만큼 회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기에 직원들은 정년까지 한 기업에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조직에 충성을 맹세하고, 기업도 직원을 가족처럼 맞이한다.
폐해도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급여가 오르니 승진이나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거나, 큰 일은 맡지 않으면서 높은 급여를 받으며 정년까지 눌러앉는 직원이 생긴다. 이들을 ‘창가족’이라고 하는데, 햇볕이 잘 드는 창가 구석 자리만 차지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높은 급여만 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의욕이 있는 젊은 직원이 봤을 때 중요한 일은 모두 자신이 하고 있는데 창가족이 높은 급여를 받는다면 정말 불합리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연공서열에 막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본식 경영과는 다르게 일한 만큼 평가받는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한국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무한 경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본식 경영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홍익대학교에 있을 때, 2015년쯤부터 2022년까지 일본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다. 지금도 나와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졸업생 10여 명은 취업에 성공해 도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중에는 이직을 해서 일본 기업 몇 군데를 경험한 졸업생도 있고, 일본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졸업생도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기업부터 이름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건실한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들 다양한 기업에서 일하며 만족스러운 일본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스펙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 시절을 불태우지만, 노력만으로는 바꾸기 힘든 스펙 중 하나가 학벌이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에 실패한 학생이 대학 4년간 열심히 노력해서 온갖 스펙을 쌓아도 대학 간판이나 출신 학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인턴십이나 취업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이것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유학이나 외국 경험 등 스펙을 쌓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다양한 형태로 도전해볼 수 있는 일본 취업은 한국 학생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자칫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로 느껴지는 일본식 경영과 같은 기업 문화가 오히려 한국 학생들에게는 일본 기업에 취업하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대기업 지향이 강한 한국에서 중소기업에 취직한다는 것은 실패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일본에 취직하게 된다면 중소기업이어도 외국계 기업이다. 누구나 아는,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회사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기업을 고를 수 있다. 게다가 일본에는 대기업만큼의 대우를 받는 유명 중소기업도 많다.
교육을 중요시하는 일본 기업에서 3년 이상 일하면 그만큼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으로서 매너와 경험, 그리고 나름의 일하는 스킬이 충분히 몸에 밸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인데, 한국 기업은 과감하게 일을 진행하는 순발력이 있지만 개인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반면 일본 기업은 조직으로 일하기 때문에 누가 담당자가 되더라도 일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체계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개인의 능력을 갖춘 한국의 인재가 일본 기업에서 일을 배움으로써 양쪽의 좋은 점을 익히고 발전시킨다면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과 무대는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일본 사회나 기업,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며 많이 침체되어 있다는 염려도 존재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평균임금이 오르지 않아 경제 발전에 있어 한국에 추월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과거 많은 일본 사람들이 “싸니까”라며 한국 관광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싸니까”라며 일본 여행을 오는 한국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일본 기업도 일본식 경영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졸업생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라고 물으면 “아직은 일본에서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일본에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한국의 친구나 가족, 음식이 그리운가”라고 말하며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던 졸업생은 어느새 7년이나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거기에는 분명 일본 기업이 가진 장점 등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 ‘동조’를 요구하는 한국이나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편안함도 분명 있을 것이고, ‘헬조선’이라는 탄식까지 들었던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큰 각오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자 주요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