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피크 차이나(Peak China)에 숨겨진 '만리장성 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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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4-09-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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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 ③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장기간 잠들어 있었던 중국 증시가 지난달 말부터 깨어나기 시작했다. 9월 24일 판궁성 중국인민은행장,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이 통화정책 완화, 부동산 부양, 주가 상승 방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가 경기를 회복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회의론이 국내외 언론을 도배하자 26일 개최된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경제정책의 목표가 부실 정리가 아니라 내수 촉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코로나 봉쇄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상하이시는 10월 1일부터 시작된 국경절 연휴에 맞춰 5억 위안(약 944억원) 규모의 외식, 숙박, 영화, 스포츠 소비 쿠폰을 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난달 13일 2019년 이후 5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중국 주가지수가 하락세에서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지난달 마지막 주 홍콩 항셍지수는 13%, 상해종합지수는 12.8% 각각 증가하였다.

사실 지난달 중순까지 중국경제에 대한 대부분의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실시된 봉쇄의 후유증이 중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었다. 작년부터 시진핑 정부는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을 대안으로 제시하였지만, 성장률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2.2%까지 떨어졌던 성장률이 2021년 8.4%로 반등했다 2022년 3%로 하락하였다가 2023년 5.2%로 상승하였다. 그 결과 1978년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연평균 9.2%라는 유례 없는 고도성장의 기억은 이제 아주 희미해졌다.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인구 감소이다. 생산가능 인구는 2010년대 중반, 총인구는 2020년대 초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구구조에서 60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약 2억9000만명에서 제14차 5개년 계획(2026∼2030년) 기간 동안 3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성장을 추동했던 인구 보너스가 사라지면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위축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도 중국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막기 위해 수출통제, 투자심사 강화, 인적교류 제한 등의 다양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이 수입대체를 통해 제재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자, 미국은 제재의 분야는 줄이고 강도를 높이는 작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 전략으로 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 결과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5G, 바이오 등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격하는 속도가 확실히 느려졌다.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 좁혀졌던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력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 미국 대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2021년 76.4%로 정점을 찍은 후 2022년 70.6%, 2023년 64.0%로 하락하였다. 자본시장에서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다. 2021년 이후 미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5조 달러 증가했는데 중국에서는 6조 달러 감소했다. 이렇게 격차가 계속 벌어지면, 중국이 미국을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는 피크 차이나 이론이 증명될 것이다.

중국 내 과당 경쟁도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생산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저가 경쟁이 만성화되면서 네이쥐안(內卷)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원래 이 개념은 총생산량은 증가하지만 노동생산성이 감소하는 경제적 역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2020년대 들어 이 개념은 좋은 학교와 직업에 들어가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사회 현상에도 적용되었다. 즉 개인들 사이의 경쟁이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 대신에 개인의 부담과 희생을 강화하는 부정적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이 개념은 기업들 사이의 무한경쟁을 분석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130개가 넘는 전기자동차 기업들의 출혈경쟁이 전기자동차 산업 발전으로 당장 이어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기술혁신보다는 정부 보조금, 세제 혜택, 저금리 신용대출 등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세적인 산업정책은 국내에서는 과잉생산, 해외에서는 통상 마찰을 야기하고 있다. 2023년 생산 증가율이 신에너지 자동차 43.7%, 태양전지 35.7%, 집적회로 34.0%, 화학섬유 30.2%를 각각 기록했다. 많은 기업이 중국 내에서 판매되지 않은 상품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다. 저가의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이 범람하자, 미국과 EU는 20∼100%에 달하는 상계관세를 부과하였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이 심각하지만 해결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의 장기적 하락을 막기 위한 과학기술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작년 9월 시진핑 주석이 헤이룽장성을 시찰할 때 처음 언급했던 신질생산력은 경제발전 목표를 양에서 질로 전환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성장은 노동과 자본 투자에 의해 추동되었다.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부동산 거품의 붕괴와 해외자본 철수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더 중요해졌다. 새로운 산업정책의 초점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전통산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스마트화·디지털화·네트워크화에 맞춰졌다.

과잉생산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난 5년 평균 중국 제조업 가동률은 73∼77%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인 80% 이상을 넘지 않았다. 또한 친환경 제품은 현재 수요가 많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만약 중국이 더 많이 수출하지 않으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저렴한 중국산 제품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대중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상계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소비자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언한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가 가구당 연 2600달러의 부담을 추가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중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피크 차이나 이론의 적실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글로벌경제 성장에서 중국의 기여도는 30% 내외로 인도(약 15%)와 미국(약 13%)보다 2배 이상 높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에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원조를 공여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GDP 성장률 하락이 대외 영향력의 약화로 바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네이쥐안의 효과에 대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중복 투자가 비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효과가 있지만, 경쟁은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는 순기능도 있다. 해외 경쟁보다 훨씬 더 치열한 중국 내 경쟁에서 생존한 일부 기업은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였다.

화웨이는 2019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집요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매출과 수익을 동시에 증대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제재를 받지 않는 기업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첨단기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이다. 2024년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7년부터 7년 연속 특허출원 1위를 차지했다. 작년 화웨이의 특허 건수는 6494건으로 2위 삼성전자(3924건)의 거의 두 배였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BYD의 약진이 눈부시다. BYD는 20∼50%의 상계관세를 부담해도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저가 모델을 출시하여 글로벌시장의 선두 주자 테슬라와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는 CATL의 아성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일원화하고 고가의 니켈·코발트·망간 대신 저가의 리튬·인산철을 사용한 CATL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EU 자동차 기업과 합작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개혁개방 이후 주기적으로 등장했던 중국 붕괴론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피크 차이나 이론에는 중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침체하여 미국과 경쟁에서 낙오한다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중국이 일본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중국이 성장동력을 회복하면, 미·중 경제력 격차는 다시 축소될 것이다.

피크 차이나 이론이 중국의 저력을 경시함으로써 미국의 자만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100년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미·중 전략경쟁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미국이 벌써 승리를 선언하는 것은 매우 성급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이 추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방심하게 되면, 1980년대 유행했던 미국 패권 쇠퇴론이 부활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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