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도 마찬가지다. 극 중 우원그룹 회장 김강헌(김명민 분)의 첫째 아들 김상혁 역을 맡은 그는 묵직한 무게감과 위압감을 드러내며 극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허남준은 '유어 아너'에 온전히 녹아들었고 매 장면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깊고 짙은 허남준의 자취들. 그를 모를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는 이유다.
"촬영이 끝났어도 (드라마 종영을) 실감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다 같이 모여서 마지막 회를 보고 나니 '아, 진짜 끝났구나' 싶더라고요. 속이 허전해요. 왜인지 살짝 슬픈 기분도 들고요. 하하."
허남준이 연기한 '김상혁'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인 캐릭터다. 이복동생이 의문의 죽음을 맞자 무자비한 복수를 시작하며 아버지 '김강헌'의 평정심마저 뒤흔든다.
"처음에는 김상혁의 악행이 (시나리오에) 모두 담기지 않았어요. '멋있는 친구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극이 진행되면서 '아, 얘는 쓰레기구나' 깨달았죠. 하지만 제가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니까 애정을 담아서 바라보려고 했어요."
김상혁은 마약, 성폭행, 살인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인물로 시종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트리곤 했다. 허남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좀처럼 김상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기 때문에 최대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이해하기 쉬운 역할은 아니었어요. 감이 잘 안 잡혀서 감독님, 김명민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캐릭터를 빚어나갔죠. 제게 큰 영감을 준 이야기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역할' '시한폭탄 같은 아이'라는 것이었어요. 등장부터 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 점들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죠. 그래서 첫 등장이었던 '장례식장' 신이 매우 중요했고요."
그의 말대로였다. 김상혁의 첫 등장은 온·오프라인을 뒤흔들었다. 그는 짧은 등장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였고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냈으며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내부에서 장례식장 신을 찍고 외부에서 기자회견 신을 찍었어요. 모두 같은 날 찍은 거예요. 지금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엄청나게 긴장했었어요. 몸이 막 떨리더라고요. 김상혁의 첫 등장이고 선배님들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거니까. 기대와 부담 그리고 압박감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담대한 척 굴고 있는데 (김)명민 아버지께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용기 있게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용기를 얻었죠."
김상혁이라는 인물을 한 신으로 정리한 것 같은 기자회견 신은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빚어낸 장면이라고. 유종선 감독과 작은 디테일까지 논의하며 찍었고 해당 장면을 찍은 이후부터는 '김상혁'이라는 인물에 대한 감도를 찾아나갈 수 있었다는 부연이었다.
"기자회견 장면은 '유어 아너' 통틀어서 가장 많이 연습한 신이에요. 정말 부담이 커서 몇 테이크씩 고생하면서 찍었거든요. 연기를 하고 나면 스스로 알아요. '이거다' 싶은 게 있고 '이건 아닌데' 싶을 때가 있거든요. 김상혁에 대한 감이 안 와서 테이크를 갈 때마다 감독님께 '좀 어떠냐?'고 물어봤었어요. 그렇게 서너 번 찍고 명민 선배님의 응원을 받고 나니까 스스로 조금씩 감을 찾게 된 것 같아요. 그 장면의 오케이(OK)를 얻어내고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무슨 말인지 살짝 알겠다 싶었어요."
허남준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던 건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디테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디테일이 수없는 조율 끝에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혁은 가슴이 텅 비어있어서 자극적인 반응으로 연명해 나가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어리고, 허세도 가득하죠. 자기가 강하다는 걸 계속해서 증명하고 싶어 하는데 그게 걸음걸이나 몸에 밴 습관으로 드러났으면 했어요. 그런 작은 버릇 같은 게 그의 과거를 엿볼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대신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까지 감춰야 할지 조율하는 게 저의 숙제였어요. 연기를 하고 나면 나머지는 감독님께 맡기기도 했죠.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었어요."
단순한 악인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김상혁은 이 같은 디테일로 입체적이고 심연이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 가족 간 관계들이나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김상혁이라는 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물 간 관계성은 명민 아버지의 도움이 컸어요. 제가 헤매고 있을 때 (김명민이) '이러이러한 해석을 해봤는데 어떻냐'고 말씀해 주셨고 바로 정리가 됐어요. '이렇게까지 크게 보시는구나' 싶으면서 동시에 '아버지 덕에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은데' 싶더라고요. 하하. 그날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김상혁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성을 정립해 봤어요. 아버지 덕분에 더욱 깊고 명확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상혁은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시청자들은 방송이 끝난 뒤 김상혁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은 단위 디테일까지 찾아냈다. 팬들의 의견이 활발해질수록 캐릭터는 생명력을 가지게 됐고 이 힘은 마지막 회까지 이어졌다.
"시청자분들께서 상혁이에게 관심 가져주시고 해석해 주시는 게 정말 즐겁고 감사했어요. 동생과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 등 (팬들의 의견이) 거의 맞았어요. 제가 연기한 대로 알아봐 주시는 게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상혁이는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 특히 동생 은이는 상혁을 인간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어요. 그를 순수하게 봐주는 건 은이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이런 관계 설정들을 신경 써봤는데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셔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2019년 영화 '첫잔처럼'으로 데뷔해 어느새 5년 차가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쉼 없이 달린 허남준은 "즐겁기만 했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싶어요. 솔직히 5년이나 된 줄 몰랐어요. 정말 즐겁게 지내고 있거든요. 운이 참 좋았어요. 일하면서 스트레스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 다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조금 무섭기도 해요. 막 일을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대사가 조금 더 늘어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속도가 빠른 것 같아요. 행복한데, 무섭고, 그런데 또 행복해하고 있어요. 하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5년 뒤 허남준의 모습을 점쳐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 5년 뒤는 어떨 것 같냐"고 묻자, 그는 "더 성숙한 배우가 되어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더욱 두려운 일도 생길 거고, 재밌는 일도 생기겠죠? 사람으로서, 배우로서도 성숙해지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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