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비리와 각종 횡령 행위가 발각돼 '사학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쓰고 물러난 서울 충암학원 구 재단이 복귀를 시도했으나 항소심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앞서 1심 법원이 구 재단 측 손을 들어주면서 일각에서 "학교 정상화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는데 항소심 법원이 비리를 저지르고도 다시 학교로 돌아오려고 한 구 재단에 철퇴를 내려친 것으로 보인다.
15일 아주경제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3부(조찬영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구 재단 인사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이사선임처분 취소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충암초·중·고를 운영하던 충암학원 비리는 2015년 충암고 교감이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한 학생에게 "급식 먹지 말고 꺼져"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쌀과 식용유를 빼돌려 급식비를 횡령하는 등 급식 비리 외에도 난방비와 창호 공사비 횡령 등 부패 행위도 밝혀지면서 2017년 서울시교육청은 충암학원 이사 전원에 대해 임원 승인 취소처분을 내렸다.
구 재단이 쫓겨난 이후 충암학원은 임시 이사 체제로 4년간 운영되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과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정식이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원고들이 포함된 전·현직 이사협의체에서 후보자 4인을 추천받았다. 위원회는 이사 총 8명 중 단 한 명만 원고들이 추천한 피추천인 중에서 선임하기로 의결했다.
그러자 원고들은 소송을 냈다. 원고들은 "충암학원에서 일어난 비위행위 정도가 중하지 않은데 원고들이 추천한 피추천인 중 1명만 정식이사로 선임한 것은 설립자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됐으므로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 운영의 독자성에 관한 본질을 침해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속한 협의체가 추천한 후보자 중에는 전 이사장 자녀 이모씨가 포함됐다. 이씨는 급식 비리 행위와 관련해 당시 행정실장으로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확인됐다.
1심은 원고들 손을 들어줬다. 정식이사 선임 과정에서 구 재단 측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겨우 정상화를 찾은 충암학원에 각종 부패와 비리 원인을 제공했던 구 재단이 돌아온다는 소문이 퍼졌다. 지역 주민들과 교육 관계자들은 구 재단 복귀를 막기 위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항소심 법원은 구 재단 복귀가 학교의 투명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주민들과 교육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재판부는 "교육청의 정식이사 선임권은 학교법인의 자율성을 다소 후퇴시키더라도 국가의 일정한 개입을 통해 학교법인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정되는 권한으로, 그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에서 종전 정식이사 의견을 존중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립 목적의 영속성은 설립자나 종전이사 등 종전 지위를 회복시켜줘야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위원회가 원고들에게서 후보자 의견 청취 규정을 준수했다면 위원회가 추천된 후보자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드시 학교법인의 정식이사로 선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비리 정도가 중대하지 않다는 원고들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재판부는 "충암학원 비리에 원고들이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 확정된 사정 등을 봤을 때 원고들이 추천한 사람들이 대거 정식이사로 선임됐을 때 정상화된 충암학원의 장래 운영이 계속 유지·개선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비리의 중대성이나 유사 행위의 재발 가능성을 무겁게 여긴 것으로 보이는 위원회 판단이 사회통념에 현저히 반한다고 할 수 없어 이 같은 처분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 윤명화 충암학원 이사장은 "피말리는 길고 긴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며 "부패했던 구 법인의 덫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학법인 충암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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