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상의 과학 분야는 인공지능(AI)이 주인공이었다.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까지 AI 관련 연구가 휩쓸며 AI는 세계 학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반면 스스로를 ‘AI 후진국’이라 자조하는 일본에서는 조바심이 더욱 커진 분위기다. 현대 과학의 전면에 등장한 AI를 두고 과연 ‘역전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일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은 AI머신러닝(기계학습)의 기초를 확립한 존 홉필드 미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와 구글 부사장을 지낸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9일에는 구글의 AI기업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연구원이 미국 생화학자 데이비드 베이커와 함께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AI는 순수 학문 분야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노벨상 수상까지는 이르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 같은 틀을 깨고 명실공히 AI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하지만 세계는 본격적인 AI시대를 맞이했고, 일본에게 AI는 아픈 손가락이다. 일본은 AI 연구 및 개발 분야 세계 순위에서 하위권으로 뒤처져있다.
일본 총무성의 2023년도 정보통신백서에 따르면 AI 연구력에 관한 국가별 랭킹에서 일본은 12위에 자리해 있다. 1위는 미국, 2위가 중국이며, 8위인 한국보다도 아래다.
AI를 활용한 생명과학 및 의·과학분야 논문수(2011~2023년)에서도 중국과 미국이 선두를 다투는 상황으로, 각각 2만5000건을 훌쩍 넘긴 반면 일본은 4000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해외와의 디지털 관련 서비스 거래 상황을 나타내는 ‘디지털 수지’에서도 일본 기업 및 개인의 해외 정보통신(IT) 기업에 대한 지불액이 증가하면서 디지털 적자가 불어가고 있다. 재무성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약 2.1조엔(약 19조원)이던 디지털 적자는 10년 사이 2.5배 증가해 2023년에는 약 5.5조엔(약 5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해 방일 관광객(인바운드)으로 인한 흑자가 약 4.2조엔(약 39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관광으로 얻은 수익을 디지털 분야 적자가 모두 까먹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토록 AI 분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걸까. 대표적인 이유로 자금 부족, 열악한 연구 환경, 연구자를 지향하는 젊은 인재의 부족 등이 꼽힌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AI에 대한 각국의 민간 투자액에서 1위는 미국으로 한화 기준 약 92조원, 2위 중국은 약 9조원인 데 반해 일본은 약 1000억엔(약 9000억원)으로 12위에 불과하다.
여기에 총무성이 지난 7월 일본 국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I 이용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9.1%로 10%를 넘지 못했다. 중국 56.3%, 미국 46.3% 등에 비해 30%포인트(p) 이상 낮은 이용률이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용법을 몰라서’가 40%를 넘어 최다였고, ‘내 생활에 필요하지 않아서’라고 응답한 사람도 약 40%에 달했다.
다만 일본이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은 최근 챗GPT 국가별 액세스에서 일본이 미국, 인도 다음인 3위에 올라 높은 활용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2023년 세계 CEO 의식 조사에서 생성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일본 기업이 약 50% 정도로 나타나 기업의 AI 활용도 면에서는 세계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게이오대학 이공학부 구리하라 사토시 교수는 “일본은 AI 개발에선 뒤처졌지만 사용에는 매우 긍정적이며 노동력 부족을 AI로 메워야 할 필요성이 큰 상황”이라 짚었다. 구리하라 교수는 “인간의 판단을 고도로 활용하는 ‘자율범용형AI’ 개발로 역전을 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간만큼 지능적이거나 그보다 더 지능적인 것을 목표로 하는 범용AI 시대에는 일본이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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