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헌법정치] '민심은 천심' … 제대로 읽는 자에게만 최후의 만찬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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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24-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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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제왕적 대통령제

1987년 헌법은 대통령직선제와 더불어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외국 헌법에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5년인 대통령 임기와 4년인 국회의원 임기의 간극 때문에 여소야대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영원히 정권교체 없는 가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대통령제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대통령 임기 4년에 하원의원 임기 2년, 상원의원 임기 6년이므로 여소야대는 대통령제의 숙명이다. 미국은 여소야대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이상적인 모델인 ‘미국식 대통령제’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제3세계 국가에서 미국식 대통령제의 이식은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를 의미한다. 권력을 장악한 대통령들은 쿠데타와 정변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작위적으로 여대야소를 지탱함으로써 변형되고 왜곡되어왔다. 이에 뢰벤슈타인 교수는 동아시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한국을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대통령제를 ‘신대통령제’라고 명명하면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대통령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의 또 다른 국가 형태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현상을 슐레진저 교수는 대통령이 마치 군주주권 시대의 황제처럼 행세한다고 하여 이를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로 명명한 바 있다.

헌법 규범과 달리 헌법 현실에 있어서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의 관계는 유동적이다. 필자(‘헌법학’ 제24판, 396면)는 1987년 체제에서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관계를 헌법공학(constitutional engineering)적 분석을 통하여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왔다. 첫째로 단일 정당으로 형성된 국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우월적 대통령주의제, 둘째로 단일 정당으로 형성된 국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지만 집권당 내부에서 끊임없는 견제를 받는 대통령제, 셋째로 이질적 양당으로 형성된 국회 다수파의 지지를 받지만 연립정부에 준하는 공동정부의 대통령 우월적 이원정부제, 넷째로 대통령 재임 중 야당이 국회의 다수파이지만 복수의 이질적 야당, 다섯째로 대통령 집권하기 전부터 단일 야당이 국회의 다수파, 여섯째로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승리하여 대통령과 국회 다수파의 불일치. 그중 다섯 유형은 이미 실현되었다. 한국 헌정사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대야소의 대통령은 제왕적이다. 1988년에 실시된 제6공화국의 첫 총선에서 출현한 여소야대는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이 3당 합당에 따라 인위적인 여대야소로 귀착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소야대에서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와의 DJP연합으로 여소야대를 극복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시에는 여대야소였기 때문에 편안하게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 중 실시된 총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의회권력을 장악한 야당의 정치적 제물이 되었다. 여섯째, 즉 대통령 재임 중 실시된 총선에서 단일 야당이 의회 과반을 확보한 경우는 지금까지 가설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2024년 4월 10일 실시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75석으로 압도적 과반을 확보함으로써 현실화되었다. 다른 야당까지 합하면 292석이 야당이다. 국민의힘은 겨우 108석을 차지함으로써 개헌과 대통령 탄핵소추 저지선 확보에 그치는 집권당 역사상 최대의 참패를 맞이하였다.

야당도 국정 동반자
 
야당은 제21대 국회에 이어 제22대 국회에서도 여론의 지지가 높은 채 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을 재차 강행하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제안할 당시에는 비교적 높은 국민의 호응을 얻은 ‘의대 정원 확대안’은 결과적으로 정부·여당에는 재앙적 정책이 되어버렸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이 정부·여당을 외면한 무능력·무책임의 단적인 예이다. 그 어떤 상황에 처하여서도 학문의 전당인 대학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야 한다. 6·25전쟁 중 부산 피난시절에도 대학은 천막을 치면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였다. 그런데 사상 처음으로 내년에는 의대생 절대다수가 유급되는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의료수급체계에 혼란이 초래되면 국민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1968년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뒤흔든 학원소요가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적군파들이 도쿄대학을 점령함으로써 대학은 마비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도쿄대 학생들이 전원 유급하면서 1년간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다. 이는 현대사에서 신입생 모집을 거른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의회권력을 장악한 야당은 대통령 임기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벼른다. 대통령 임기를 못 채운 사례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에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에 따라 퇴임한 경우가 유일하다. 하지만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이 탄핵소추 의결로 인하여 직무 집행이 정지되고, 그에 따라 탄핵이 인용됨으로써 대통령제 국가에서 헌정이 중단된 후유증은 여전히 한국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 집행이 정지되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기각 결정으로 직무를 재개할 수 있었지만 탄핵심판 기간 동안 대한민국 헌정은 사실상 멈추어 있었다. 그만큼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정을 혼돈의 장으로 내몰리게 한다.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여 지방선거에 맞추어서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자는 주장도 정치적 안정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실시한다면 국회의 다수파는 여전히 건재하게 된다. 이 경우 만약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지금과 달라질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물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다시금 여대야소를 회복할 수 있지만 말이다. 1958년 ‘위대한 프랑스’를 기치로 한 소위 드골헌법은 강력한 집행부를 구상하였다. 그런데 세 차례에 걸쳐서 동거정부를 체험한 프랑스에서는 2000년 개헌에서 대통령 임기 7년을 5년으로 단축함으로써 하원의원 임기와 일치시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였다. 하지만 2024년 6월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발동으로 그 일치 주기는 무너졌다. 동시에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의 일치도 붕괴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중남미와 같은 잦은 헌정 중단은 막아야 한다. 한때 국가적 번영을 누리던 중남미 국가에서는 정치적 혼란으로 인하여 경제마저 추락하여 국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고 미국으로의 이민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경제난에 허덕이는 작은 국가들은 고사하고라도 세계적인 자원부국이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처한 어려움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대통령과 당대표의 갈등은 벼랑 끝에 선 정부·여당에 치명적이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불과 20%대에 머물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만약 10%대로 추락하게 되면 그 어떠한 재앙적 파국이 초래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예축하기 어렵다. 정치인 개개인의 사법 리스크는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조용히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맡겨두어야 한다. 대통령은 ‘부산엑스포 유치’라는 국가적 어젠다를 구현하기 위하여 피고인 재벌 총수들과 부산에서 파리까지 함께하였다. 그렇다면 압도적 제1야당을 거느리고 있는 피고인 이재명 대표와도 대화를 통하여 켜켜이 쌓인 국정의 현안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미국 대통령의 가장 주요한 일과는 의원들과의 대화와 국민과의 일상적인 소통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시행하던 ‘도어 스테핑(door stepping)'을 중단하면서 언론과의 대화도 멀어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과 같은 국민과 대화하는 장도 열어가야 한다. 향후 정치적 갈등은 여야 지도자들에게 맡겨서 성공과 실패는 모두 그들의 몫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정치 공세 이외의 영역은 얼마든지 합의가 가능하다. 4대 개혁, 즉 연금·노동·교육·의료 개혁과 국가 존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구절벽과 지역소멸 문제 등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이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제21대 국회에서 실패한 연금개혁안만 하더라도 여야 간 이견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거듭 정부·여당의 분발을 촉구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임기 5년 내내 여소야대에 시달려야 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꽉 막힌 정국을 능동적으로 타개해 나간다면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대통령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대통령은 5년간 한시적 세입자에 불과하다. 차기 대선은 단임인 현 대통령과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 벌써 4번째 정권교체를 체험한 현 체제에서 대통령이 굳이 정권 재창출 여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차기 대선 놀이는 오로지 정치인들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야 한다. 대통령이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국정의 올바른 방향이 보일 수 있다. 야당도 탄핵과 특검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정치투쟁만으로 민심을 얻기 어렵다. 헌재 소장 및 재판관 궐위, 방통위원장의 탄핵소추에 이어 검찰총장까지 탄핵소추되면 헌법기관의 정상적인 작동이 휘둘리게 된다.

대통령직의 정권교체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보여준 민심은 그 어떤 작위적인 정치 공세를 넘어서 있다. 민심은 천심이다. 하늘의 뜻은 고착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유동적이다. 그 민심을 제대로 읽는 자에게만 최후의 만찬이 제공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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