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찾은 ‘AI 콘텐츠 페스티벌 2024’에서는 ‘이현세 AI 프로젝트’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대표 만화작가 이현세가 46년간 그린 만화 4200여 권 분량의 원화를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AI를 훈련한 것이다. 누구든 이 AI로 그림을 그리면 이현세 작가의 독창적인 그림체로 이미지를 새롭게 생성할 수 있다.
이 부스를 방문한 김재명씨(59)가 남자 얼굴을 쓱쓱 그려 넣자 그림이 귀여운 까치로 바로 바뀌었다. 눈, 코, 입, 머리카락을 대충 그렸을 뿐인데 마치 이 작가가 그린 듯한 이미지가 생성됐다.
어릴 적 까치가 주인공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즐겨 봤다는 김재명씨는 “AI는 참 편리한 도구 같다. 까치 그림이 참 마음에 든다”며 “(AI 덕분에) 창의성을 극대화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겠다. 앞으로는 스토리 구상과 캐릭터 특징을 잘 잡아내는 영역이 중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AI는 토르의 망치···창의성 무한대로 펼친다"
AI가 콘텐츠 분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인간이 ‘알파고의 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6년 이세돌 바둑기사와 알파고 간 대국 당시 알파고의 뜻에 따라 돌을 놓았던 아자황 박사처럼 AI가 모든 결정을 주도하고, 인간은 AI의 지시를 따르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비관론이다.
이미 웹툰 시장에서는 AI를 창작도구로 활용해 제작한 작품들이 유통되고 있다. AI 기반 투툰 플랫폼을 활용해 만든 공포 미스터리 웹툰 '타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창작자가 세계관을 비롯해 주연과 조연의 이름, 나이, 성별, 직업 등을 설정한 뒤 줄거리, 사건 구성 등을 정하면 각 컷에 맞는 줄거리와 이미지 등이 생성된다.
투툰 관계자는 "웹툰 작가들이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성할 때 활용하곤 한다”며 “작가가 본인의 그림체를 보내면 그에 맞춰 그림도 생성한다”고 덧붙였다.
출판계에서도 표지 작업에 미드저니 등 생성형 AI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살의의 형태> <진흙탕 출퇴근> 등 표지는 생성형 AI로 만든 작품이다. AI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책 내용에 적합한 이미지를 고를 수 있다.
창의성이 기본···“K-생성형 AI 없어서 아쉬워”
콘텐츠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저해할 것이란 주장이 과도한 우려라고 입을 모았다.
권한슬 AI 영화감독은 “(AI가 인간을 통제할 것이란 전망은) 영화 속 얘기다. AI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니다”며 “사람이 AI를 통제하며 선택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AI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는 “모두가 웹툰이나 음악을 만들 수 없다. 본래 작업을 잘하는 학생들이 (AI를) 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전체 만화시장이 7조원 규모고, 그중 1조원이 웹툰”이라며 “이 중 90%가 한국 웹툰이다. AI 웹툰도 우리가 선도해야 한다”고 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K-생성형 AI의 부재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국만의 독자적인 AI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AI 콘텐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부 지원 사업이 없다”며 “AI 국내 개발자를 발굴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 AI 개발자를 양성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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