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시간)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년 만에 개최된 중·일 정상회담은 당초 예정된 시간인 20분을 훌쩍 지나 약 35분 동안 이어졌다. ‘트럼프 2기’에 맞선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중국과 일본 정상의 이번 만남은 양국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난달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처음으로 마주 앉아 ‘전략적 호혜관계’ 추진을 재확인하고 산적한 현안을 논의했다. 이시바 총리는 최근 발생한 중국 군용기의 일본 영공 침범 등 중국의 군사 활동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일본 수산물의 조기 수입 재개를 시 주석에게 요구했다. 이에 시 주석은 처음으로 수산물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 관련 사항을 착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회담이 끝난 후 일본 측에서는 중국의 대일 접근 자세가 돋보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이번에는 중국도 회담에 적극적이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조정 작업이 1년 전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와 시 주석 회담 때보다 원활하게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중·일 정상회담은 막판까지 난항을 겪으면서 당일 아침에야 회담의 정확한 시간이 결정된 바 있다.
이날 회담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당선을 축하한다”며 인사말을 건넨 시 주석은 “이시바 총리가 취임 후 양국 관계 발전의 결실을 양국 국민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에 찬사를 보낸다”고 평가했다.
또한 시 주석은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에서 가까운 이웃이자 중요한 국가이며, 양국 관계는 양자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의 발전은 일본과 세계 이웃 국가들에 기회”라며 양국 간 인적 교류 등을 강화할 것을 이시바 총리에게 요구했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자세에 대해 일본은 중국이 내년 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중 대립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주변국과 관계 안정을 이전보다 중시하게 되면서 일본에도 이전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중국이 트럼프에 대한 발언권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같은 수출 국가인 일본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짚었다.
또한 중국이 일본을 중시하고 있는 것에는 ‘트럼프 대항’ 이외의 목적도 엿보인다. 중국의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해 2분기 연속 성장세가 둔화했다. 부동산 불황 및 중국 내 수요 부족으로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어 해외 투자 유치를 강화해 내수 부족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중국은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중·일 간 무역·투자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미·중 양대 강대국과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본 경제 및 안보의 리스크 감소에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것 없다.
특히 정권 기반이 취약한 이시바 총리에게 있어 대중 관계 개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상황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여름 이후 일본 주변에서 벌어진 중국군의 도발적 행동은 일본의 정치적 혼란의 틈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시바 총리가 소수 여당으로 정권 운영을 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시 주석과 만나 중·일 간 안정적 관계 구축에 대해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다만 여소야대 상황에 몰린 이시바 내각이 외교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미 이시바 총리가 내년 봄 2025회계연도 예산안 통과 뒤 혹은 내년 여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퇴진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처럼 ‘불안 요인 최소화’라는 점에서 중·일 양국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정권 기반은 곧 약한 외교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일 관계가 어디까지 개선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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