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음 달 23일 열릴 임시주총에선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 수 상한 설정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며 MBK·영풍 측과 최윤범 회장 측 간 치열한 표 대결이 예상된다. 특히 집중투표제는 MBK·영풍이 자사 이사진을 선임하는 데 제동을 걸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MBK는 이 제도가 최 회장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임시주총 안건을 정정한다고 공시했다. 이번 정정 공시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의 수 상한 설정, 주식 액면분할, 배당기준일 변경, 회사 측 추천 사외이사 후보 등이 추가됐다. 이 중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 수 상한 설정이 MBK·영풍 간의 경영권 분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으로 주목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비례해 이사 선임에 대한 의결권을 부여하며, 주주는 각 이사 후보에 대해 독립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어, 고려아연의 지분구도에서 MBK·영풍은 46.71%, 최윤범 회장 측은 19.96%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간단히 보면, MBK·영풍은 47주, 최 회장 측은 20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10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집중투표제하에서 MBK·영풍은 470개의 의결권을, 최 회장 측은 200개의 의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MBK·영풍이 만약 10명 모두 자사의 이사진을 선임하려 한다면 의결권을 각 1명당 47개씩 분산 투표해야 한다. 반면 기존 이사진 다수를 확보 중인 최 회장 측은 예를 들어, 전략적으로 단 4명의 자사 이사를 신규 선임하려 할 수 있다. 이때는 각 1명에게 50개씩 투표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최 회장 측은 다득표로 신규 이사를 추가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MBK·영풍 측 이사 중 적어도 몇 명은 선임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이 방식에서 MBK·영풍은 자사 후보를 선임하기 위해 의결권을 분산시켜야 하며, 반면 최 회장 측은 자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해 이사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보호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최윤범 회장이 의결권 기준 지분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를 활용하려 한다"며 "겉으로는 주주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본인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제도를 남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의됐으며, 이는 법률에 의거한 합법적"이라며 "다른 기업들의 수많은 선례를 보면 정관 변경을 전제로 한 주주 제안은 아무런 법적 문제나 하자 없이 실제 주총에서 진행됐으며, 이는 대법원 판례로도 충분히 입증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 판례(2006다62362)에 따르면 주주총회 결의의 효력은 그 결의가 있는 때에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상장 회사가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하고 있는 경우에도 주주가 회사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제안하는 것은 상법상 적법한 행위이며, 주총에서 정관 변경이 가결되는 것을 조건으로 변경된 정관에 따른 주주제안을 사전에 하는 내용의 조건부 집중투표 역시 합법적이며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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