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집중 문제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30대 기업 중 21곳(70%)이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인천·성남 등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27곳(90%)이 밀집해 있었다. 취업 준비생들이 경기도 판교와 기흥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남방한계선’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기업의 정책과 노력이 추가로 필요한 시점이다.
2일 산업계에 따르면 30대 기업 중 수도권 외에 본사를 둔 기업은 포스코(포항), 중흥건설(광주), 하림(익산) 등 세 곳에 불과했다.
30대 기업 본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중구(8개)로 집계됐다. 이어 경기도 성남(4개)과 서울 종로구(3개), 서울 강남구(2개), 서울 송파구(2개)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울산광역시는 한국의 주요 도시임에도 30대 기업의 본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대 기업 본사와 핵심 계열사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함에 따라 20·30대 청년층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에 몰리고 있다. 이로 인한 지방 고령화·소멸은 이미 현실이다. 이러한 취업자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을 놓고 취업 남방 한계선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사무직은 HD현대, 카카오, 네이버 등이 있는 경기도 성남 판교, 기술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있는 경기도 용인 기흥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으려는 현상을 빗댄 단어다.
대덕연구개발특구를 품고 있고 행정수도와 연계 가능한 대전이나 대규모 산업단지를 보유한 울산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문제는 대규모 연구개발 및 산업 단지에서 파생되는 일자리 혜택을 볼 수 없는 대구(경북)와 부산(경남), 광주(전남) 등이다. 2022년 대구·경북의 인구는 493만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각각 4.4%, 4.6% 줄었다. 65살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을 나타내는 노령화지수도 대구 175.6%, 경북 232.6%로 전국 평균을 웃돈다. 한때 인구수가 388만명에 달했던 부산시의 인구도 지난해 329만명으로 330만명 선이 무너졌다. 고령인구 비율도 22.6%로 전국 특별·광역시 중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 주도 대규모 투자는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360조원 규모 민간투자가 이뤄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성되는 용인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최대 346만개의 직간접적인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맞춰 클러스터 근교에 있는 경기도 용인, 광주, 안성, 이천 등의 인구 수도 함께 급증할 전망이다.
물론 기업도 할 말은 있다. 석박사급 이상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본사와 주요 사업장이 수도권에 위치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은 전력·수자원 확보 어려움과 인근 주민의 설립 반대 등에도 불구하고 용인 클러스터를 최적의 입지로 낙점했다.
본사 지방 이전으로 인재가 이탈한 대표 사례로는 국민연금을 꼽을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퇴사자 수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에서 지방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매년 20~30년이 회사를 떠났다. 기금위 회의록에 따르면 2018~2023년 퇴사자들이 퇴사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전주에 있기 때문'(38%)이었다. 최근 한전기술 원자력설계개발본부가 경북 김천시로 본사를 이전하려 하자 소속직원 300여 명 중 5분의 1에 달하는 70여 명이 퇴사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조차 지방으로 보고 본사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3년 5월 국토교통부가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했지만 산은 노조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산은 노조는 인재 이탈로 인한 국책은행 기능 약화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최대 선사이자 부산항에 거점을 두고 있는 HMM도 본사 부산 이전을 놓고 직원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산은과 HMM을 유치해 지역 기반 30대 기업이 없는 문제를 해소하려던 부산시도 고심이 함께 깊어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인재 확보가 어려운 지방에 대규모 투자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며 "정부 차원에서 우수 인재가 지방에 몰릴 수 있는 요인을 우선 조성해야 기업들의 수도권 외 본사 이전과 지방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