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을 앞세워 '인재 사냥'에 나섰던 중국 반도체 업계 움직임이 신중해졌다. 2023년부터 이어진 반도체 불황으로 투자액이 줄면서 자금난에 처한 탓이다.
중국 반도체 전문 컨설팅회사 아이지웨이(愛集微)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경력 채용직 평균 연봉은 34만 위안(약 6800만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약 4% 낮아졌다. 중국 제일재경일보는 반도체는 여전히 고액 연봉을 받는 대표적인 산업이지만, 전체 연봉 수준이 점차 하락하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특히 팹리스(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연봉 하락세가 뚜렷했다. 50만 위안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는 디지털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 엔지니어의 경우, 지난해 연봉이 전년 수준과 비교해 1~8% 낮아진 것.
그간 미·중 패권 경쟁 속 중국 지도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대적으로 나서면서 투자금이 물밀듯 밀려온 팹리스 스타트업들은 고연봉을 앞세워 중국내 선두 팹리스 업체나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서 '인재 빼가기'가 비일비재했다. 연봉 최고 6배 인상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수많은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들이 스타트업으로 옮겨갔다. 팹리스 경력이 없는 반도체 엔지니어도 스카우트 대상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2023년 반도체 산업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규모가 줄었고, 팹리스 기업 수 증가세도 둔화세를 보였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시노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중국 반도체 프로젝트 투자액은 1조5000억 위안(약 300조원)에 달했으나, 2023년 반도체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투자액은 1조2000억 위안으로 약 22% 감소했다. 2024년 투자 규모는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반도체 산업의 공격적인 인재 사냥 열기도 차츰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기업 오포 계열사인 팹리스 전문업체 저쿠(哲庫) 테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500억 위안(약 1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칩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 회사는 2021년과 2022년 고액 연봉을 앞세워 인력을 대거 빼갔다. 2020년 약 800~900명에 달했던 직원 수가 2022년 2500명으로 늘어났을 정도다. 그러나 2023년 매출 부진 속 거액의 연구개발(R&D)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회사는 결국 해산됐다.
반도체 테스트 장비 전문 스타트업의 한 관계자는 "현금 흐름에 여유가 없어 지난해 연봉을 동결하고 인재 채용도 없었다"며 "대신 회사에서 오래 경력을 쌓은 직원의 이탈을 막고 경력이 짧은 신규 인력을 뽑아 회사에서 육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정·장비 부문 엔지니어 연봉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지웨이에 따르면 공정·장비 엔지니어 평균 연봉은 20만 위안으로, 전년보다 7~8% 올랐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는 2025년말까지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 성숙공정 생산력이 글로벌 '톱10' 파운드리 업체 생산력의 25%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며 반도체 공정·장비 엔지니어 수요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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