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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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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권위주의 체제의 종언을 고하는 대통령 직선 쟁취를 위한 6월항쟁으로 1987년 헌법 체제를 수립하였다. 1952년 6·25 전쟁 때 임시수도 부산에서 야당과 민심을 외면한 채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단행하였다. 제1차 개헌의 화두가 간선 고수라면 제9차 개헌은 직선 쟁취였다. 정치제도에는 절대선도 없고 절대악도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동시에 역사의 순환을 보여준다. 역사의 물결과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다.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제의 종언을 고하는 공화국의 창건은 핏빛으로 얼룩진다. 주권재민의 근대혁명을 연 1789년 프랑스혁명은 국왕을 기요틴(guillotine)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1948년 이 땅에 최초로 핏빛 없는 온전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었지만, 그 대가는 어둡고 긴 역사의 터널을 헤쳐 나가야 했다. 1987년까지 9개의 헌법이 명멸해갔다. 하나의 헌법이 4년을 채우지 못한 헌정사의 파탄 속에서 민주헌정은 집권자의 야욕으로 멍들어갔다. 87년 헌법은 10번째 헌법이다. 39년이란 짧은 기간에 6개 공화국을 연 공화국이라는 상품의 전시장이었다. 권위주의가 종식되고 직선대통령 시대를 맞이하면서 헌법은 지난 38년간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안정을 구가한다.
5년 단임으로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가 사라진 자리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퇴행을 거듭한다. 대통령의 불행인지 아니면 대통령 복이 없는 국민의 불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행복한 미소 속에 박수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새 3명의 대통령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명은 수사과정에서 자진했다. 3명은 현대판 고려장인 탄핵에 내몰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심판과 내란혐의 형사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대통령직을 유지한 채 헌재의 탄핵심판과 법원의 내란재판에 동시에 출석한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여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현직 대통령의 구속 수감과 재판받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제3세계 국가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법조인 그것도 검찰총장이라는 최고위직을 역임한 대통령이기에 더욱 놀랍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른 사법절차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민주법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판과정에서 찬탄핵과 반탄핵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비상계엄 이전보다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헌재와 법원의 재판으로 국민통합의 새 장을 열어야 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계엄 모의에 사전에 깊이 관여한 인사는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하지만 당일 작전에 단순히 동원된 군경 등 공직자에 대하여는 국민통합을 위해 특별한 관용이 필요하다.
12·3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불안해한다. 민주화 이후에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안착,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알리는 한강의 기적, 민주와 경제의 응집물인 K컬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쌓아올린 금자탑이 계엄으로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의 바벨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오히려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찍이 우리는 1997년 IMF 환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때 아닌 비상계엄에 대한민국호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뜬 눈으로 날밤을 새웠다. 하지만 12월 4일 코스피 지수는 2464로 36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원·달러 환율은 1304원으로 안정을 유지했다. 2월 21일 현재 코스피 지수는 2654로 안정적 상승을 유지한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0원까지 급등하였지만 1433원으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해외 평가기관의 국가신용도 계엄 전과 마찬가지로 AA-를 유지한다. 그만큼 정치인들이 일으킨 소란 속에서도 한국 경제가 안정적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K산업, K컬처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고도 밝다. 포브스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powerful)한 10개국 중에서 한국이 프랑스·일본을 제치고 7위에 등극하였다. 한국은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이 강력하다고 한다.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LG전자의 기술력에 더하여 KAI·한화를 비롯한 K방산이 세계를 휩쓴다. K조선은 중국에 대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바다의 수호신이다. K조선이 아니면 미군함정조차도 중국을 찾아가야 할 판이다. K컬처는 어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에서 오징어 게임까지, 조성진·임윤찬의 클래식에서 싸이·BTS·로제의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마침내 아름다움과 젊음을 향한 코스메틱(cosmetics)도 세계를 제패한다.
이제 술래잡기의 마지막 장면은 정치로 모아진다.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자살해도 그들만의 문제로만 보아왔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왜 대통령의 불행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가? 바로 여기에 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면면을 보면 다들 나름 훌륭한 분들이다.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넘어설 자질이 차고 넘쳐 보인다. 물대통령에서 민주화의 화신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그들을 직접 뽑았다. 능력을 검증하기 위하여 치열한 토론도 펼쳤다. 하지만 대통령직에 오른 순간 국민이 부여한 신임을 배반하였다. 이건 아닌데, 국민들은 한숨만 쉬다가 또 5년 후 새 사람을 선택할 뿐이다. 선택당하는 시간은 찰나고 5년은 유아독존이다.
1987년 체제 극복할 민주공화국 헌법
이래서는 안 된다. 계엄으로 87년 체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더 이상 자신이 뽑은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틀을 짜야 한다. 그 새 틀이 국민적 열망에 호응해야 한다. 대통령들의 무덤이 펼쳐졌음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기를 원한다. 군주제가 없는 공화국에서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 모여서 간접선거로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뽑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대통령 직선제는 유효하다. 그런데 38년 동안 보아왔듯이 직선 대통령의 정치적 무책임은 대통령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중간지점을 찾아서 정치적 무책임 속에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과 무책임한 비판만 일삼는 의회가 모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으로는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정부에 들어와서 책임을 공유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의 신임에 기초한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내각을 구성하는 체제다. 정치권 즉 정부와 의회가 책임을 공유하는 정치제도의 설계는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퍼즐이다. 그 명칭은 상관없다. 정대철 회장의 헌정회 개헌안과 같은 권력분산적 대통령제, 반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혼합정부제 등등.
더 이상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여야가 서로 죽기 살기로 오케이 목장식 결투를 벌이는 정치가 아니라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 즉 직선된 대통령과 의회가 병존하는 정치제도에서 마주 달리는 두 개의 열차가 충돌하는 상황이 아니라 함께하는 제도에 기반한 운용이 필요하다. 사실 현행헌법에서도 얼마든지 이원정부제적 운용이 가능하다. 즉 대통령 재임 중 실시된 총선거에서 국회 다수파를 단일 야당이 차지할 경우에는 야당의 국정참여를 보장하면 된다. 필자(헌법학 제24판)가 87년 체제에서 가능한 6개 모델에서 마지막 가설로 남겨두었던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국회 다수파를 장악하는 모델이 2024년 총선거에서 처음으로 현실화되었다. 권력분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야당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야당도 정부와 대화보다는 탄핵과 예산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감사원장, 장관, 판사·검사가 탄핵소추당하는 현실을 인내하지 못한 대통령은 마침내 비상계엄이라는 극약처방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1958년 파탄에 이른 프랑스 제4공화국을 재건한 드골헌법은 강력한 정부를 구현하였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일치할 경우에는 강력한 대통령주의제로 작동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불일치할 경우에는 1986년 이래 3번의 동거정부를 연출하였다. 동일한 헌법에서 여야가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에 순응한 결과이다. 미국식 분리정부 현상에 처한 87년 체제는 비상계엄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한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에서의 이식은 죽음의 키스임을 입증한다. 이제 미국식 대통령제의 틀을 벗어나 프랑스나 핀란드와 같은 이원정부제를 통한 통합정부 구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천명을 다한 87년 체제에 더 이상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제7공화국을 향한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여야 한다.
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 액턴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고 했다. 몽테스키외는 “권력을 가진 자는 항상 그 권력을 남용하려 한다“는 명제에 따라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역설하였다. 권력의 세계에서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정치제도의 정상적인 작동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선제를 고수하는 한 대통령의 선의(bona fides)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국민들도 두 눈 부릅뜨고 현자(賢者)를 선택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의 덕목은 무엇보다도 자기 절제를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정객이 아니라 국리민복을 구현할 국가적 인물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의 어른으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여야 간의 정쟁으로부터 초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복잡다기한 국정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주권자의 선택은 그런 대통령을 모셔야 할 권한이 아니라 책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국민적 저력은 새 시대를 여는 등불과도 같다. 한강의 기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다. 물론 미국, 서유럽, 일본의 자국이기주의는 경계의 대상이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강대국의 이빨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렇다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채택한 인민민주주의의 지붕으로 들어간 북한의 실상이 어떠한가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 인민민주주의의 종주국들조차 대한민국은 선망의 대상이다. 세계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틈바구니에 낀 지정학적 특성을 오히려 새로운 추동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중에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유일한 평화애호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 온 세계가 추앙할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확고한 믿음만이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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