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달콤하지만 사악한 초콜릿…요동치는 세계 카카오 시장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입력 2025-02-25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초콜릿은 달콤하지만 사악한 식품이다.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광활한 토지가 필요하기에 열대우림의 벌목으로 이어져 지구온난화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카카오나무를 키우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아동 노동이 동원되기에 초콜릿 산업은 가장 악명 높은 아동 노동 착취 산업으로 비난받는다.
커피 등과 함께 가장 세계화한 식품이기도 하다. 초콜릿의 세계화 기제는 훨씬 압축적이다. ‘코코아의 나라’로 불리는 서아프리카의 빈국 코트디부아르와 가나가 전 세계에 공급되는 카카오의 60% 이상을 생산한다. 유럽과 북미에서 전 세계에서 생산된 카카오의 4분의 3가량을 먹어 치우고,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포함한 아프리카에서 그 정도를 생산하니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생산과 수탈 구조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초콜릿과 커피

카카오는 적도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강수량이 너무 적으면 말라버리고 너무 많아도 썩어버린다. 해발고도 300m 이하에서 자라기에 고산지대에서 잘 자라는 커피와는 생육지를 두고 경합하지 않는다. 정글에서 자라는 작물답게 경쟁자를 없애려고 자라는 땅에 독을 내뿜는다.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 연중 비가 일정하고 많이 내려야 누적된 토양 독성을 제거할 수 있다.
원산지는 남미로 유럽에 전해진 최초의 기록은 대항해시대의 정점인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네 번째 아메리카로 항해를 마치고 현재의 멕시코 유카탄반도 연안에서 카카오콩을 가지고 돌아가면서이다. 알다시피 가공하지 않은 자체 맛은 '타이어 씹는 맛'과 비슷하기에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점차 카카오 활용법이 개발되며 17세기 중반에는 귀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퍼졌다. 커피와 담배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설탕을 타서 마시기 시작하였고 초콜릿 하우스가 생겨났다.
지금과 같은 초콜릿의 등장은 1828년 네덜란드의 판 후텐이 카카오매스를 압착해 지방을 추출하여 카카오버터를 만들면서 가능해졌다. 이 제조 기술이 유럽 각지로 전파돼 1876년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와 앙리 네슬레가 오늘날 밀크 초콜릿으로 불리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밀크 초콜릿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페터였고, 이유식 제조자이자 연유 발명가 중 한 사람인 네슬레의 도움으로 실현하게 된다. 네슬레사의 출발점이다. 스위스 사람이 전 세계에서 가장 초콜릿을 많이 먹는 이유에 이런 역사 또한 작용하지 싶다.
제국주의 시대의 본격화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단작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카카오를 대량 재배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과 미국에서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한 페레로, 허쉬 같은 기업이 등장하며 초콜릿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카카오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이고 실제 1980년대까지 남미가 주요 생산지역의 하나였지만 이제 아프리카로 생산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브라질 등에서 병충해로 카카오 생산이 급감한 반면 생육조건상 카카오가 서아프리카에서 더 잘 자랐기에 지금은 카카오가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를 대표하는 작물이 됐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가 남미로 넘어가 그곳의 주력 농산물이 된 것과 비슷하지만 경로를 반대로 걸은 셈이다. 커피보다 활용법이 복잡하고 전통 작물이 아니어서 서아프리카에서 카카오를 키우는 농부와 농장 노동자의 다수는 초콜릿이 어떤 맛인지, 카카오가 어디에 쓰이는지를 모른다는 후문이다.

50년 만에 최고 가격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의 주요 거래 시장인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카카오 재고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세계 카카오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의 런던 시장에서 카카오 재고는 1년 전만 해도 10만톤을 넘었지만 최근 몇 달은 2만1000톤 수준으로 급감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지금까지 본 것 중 최저 수준”이라며 당황해하고 있다. 재고 감소는 생산량 감소 때문이다.
최근 2년 서아프리카에서 기록적인 폭우와 가뭄이 번갈아 나타나는 기상 이변이 나타났고 병충해까지 번지며 카카오농장이 큰 타격을 받았다. 기후학자들은 지난 15년간 서아프리카 몬순 시스템이 매우 활발하게 변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상 이변이 더 자주 더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매 가격을 고정한 정책 때문에 일부 농가에서는 아예 재배를 포기하고 있다. 카카오 생산량을 늘리고 농가 소득을 유지하려면 비료살포 등 생산여건 개선 지원과 수매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세계화에 연결된 복잡한 시장체계는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에 비효율적이다.
공급량이 줄면서 가격은 폭등했다. 주산지인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의 흉작으로 2023년 대비 카카오 가격이 3배 상승했고, 지난해 12월엔 5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최근에는 가격이 고점 대비 약 20% 하락했으나 물량 확보 문제는 여전하다. 초콜릿 제조업계는 국제 카카오 가격 상승으로 원가 압박에 시달리면서 재고까지 감소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원가 상승분을 반영해 상품 가격에 반영하거나 초콜릿 제품 용량을 줄이고 카카오 함량을 낮추는 게 현실적인 대응이다. 실제로 지난 밸런타인데이 기간에 미국의 초콜릿 소매가격은 전년 대비 최대 20% 상승했다. 유럽에선 달러 강세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지난해에만 평균 11% 넘게 올랐다. 변동성이 큰 장이 형성되자 투기 세력이 뛰어들어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초콜릿 시장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은

2020년 네슬레와 허쉬 등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은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진 아동 노동 착취를 묵인한 혐의로 집단 소송을 당했다. 집단 소송에 참여한 원고 8명은 서아프리카 말리 국적자로 16세 미만인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범에게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아동의 불법적 노예 노동을 방조했다고 비난했다. 정상적으로 성인을 고용해 일을 시키는 것에 비해 안전장비를 채우지 않은 아동을 불법 노동에 투입하는 게 농가에 이익이고, 낮은 공급가가 유지되기에 글로벌기업에도 이익이어서 불법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다. 확인된 것만 2013~2017년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어린이 1만4000여 명이 강제 노동을 당했다.
모두 노예 노동인 것은 아니다. 작업 환경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다 가난에 시달리는 부모가 농장주에게 자녀를 넘기기도 한다. 어떤 아동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자진해 카카오 농장으로 갔다. 장시간의 위험한 노동을 시키고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 이러한 속임수 외에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카카오 농장에 파는 인신매매조직도 활동하고 있다.
2023년엔 미국의 대형 식품기업 카길을 상대로 아동 노동 착취 혐의로 워싱턴DC 고등법원에 소송이 제기됐다. 가나 코코아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이 원고로, 그중엔 5세 미만인 어린이가 포함됐다. 국제 인권변호사들이 그들을 돕고 있다.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 노동자는 하루에 최대 14시간 일한다. 전기톱으로 농장 안의 숲을 정돈하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칼로 작업을 한다. 아동 노동 감시 단체들에 따르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미성년자 중 90%가량이 위험한 작업에 내몰렸다. 아동이 농약에 노출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보호복을 입지 않은 채 방제를 위해 열매 꼬투리에 농약을 뿌린다. 2018년 조사에서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 농약에 노출된 어린이 비중은 10년 전 15%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한 50%로 나타났다. 일부 아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얻어맞고, 일과를 끝내고 창문조차 없는 건물의 나무판자 위에서 잠을 잤다. 당연히 깨끗한 물이나 위생적인 욕실은 제공되지 않았다.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예 노동이 국제적인 관심사가 된 지는 오래다. 2021년에 체결된 하킨-엥겔 협약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미국 민주당 엘리엇 엥겔 하원의원, 톰 하킨 상원의원과 초콜릿 산업의 8개 대기업 대표 등이 서명한 이 협약은 서아프리카에서 아동 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금지 및 즉각적인 조치에 관한 지침이다. 2002년에는 협약에 따라 비영리단체인 국제코코아재단이 출범해 협약 내용을 구체화하는 책임을 맡았다. 협약이 체결되고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이나 유럽 내에서 일어난 아동 노동이었다면 즉각 개선책이 마련되고 관련자가 감옥에 갔겠지만 대서양과 지중해 건너 서아프리카의 일이어서 기업은 물론 소비자가 묵인해 버린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아동 노동이 선진국의 기업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선진국엔 한국 또한 포함된다.
카카오 농장에서 여전히 아동 노동이 만연한 이유가 선진국 초콜릿 기업의 탐욕과 소비자의 위선 외에 서아프리카 현지의 구조적 여건도 있다. 카카오 생산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져 농부의 소득이 줄면 아동 노동이 증가한다. 예컨대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가격 하락으로 농가 소득이 10% 감소하면 아동 노동이 5%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 농부들은 코트디부아르에서 하루 약 50센트, 가나에서 하루 약 84센트를 벌어들인다. 하루 2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수입이다. 서아프리카의 카카오는 대체로 독립적인 소규모 자작농이 재배한다. 이들에 대한 아동 노동 감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교통이 불편한 외딴 지역의 카카오 농장에는 사법 시스템이 닿지 않아 아동 노예 노동이 있다고 해도 기소가 어렵다.
앞으로 전 세계에서 초콜릿 소비량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어서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 아동의 강제 및 노예 노동 또한 예상된다.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현재의 세계 시스템에 변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최근 모색되는 카카오 대체재 개발 바람이 주목된다.
독일 푸드테크 스타트업 ‘플래넷A’는 최근 3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2021년 설립된 플래넷A는 귀리와 해바라기씨 같은 식물성 원료를 발효해 초콜릿 맛을 구현하고 있다. 초콜릿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동 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캐롭 기반의 대체 초콜릿이 탄생했다. 캐롭은 허브의 한 종류로, 과육을 캔디로 먹거나 초콜릿의 풍미를 내는 데 쓰인다.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 연구팀은 카카오콩의 펄프와 내과피를 활용한 새로운 초콜릿 제조법을 개발했다. 카카오콩 활용도를 높여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농가 수입을 올리는 일석이조를 겨냥했다.
지속 가능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초콜릿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에 반대한 윤리적 소비 논의도 마찬가지로 꽤 됐다. 그러나 카카오 대체재 개발 같은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은 윤리적 결단보다는 카카오 공급 부족에 대한 시장 대응의 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콤한 이야기는 아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