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험사들이 후순위채를 비롯한 자본성증권 발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올해 들어 찍어낸 자본성증권 규모는 이미 2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수요도 몰리다 보니 당초 예정보다 발행량을 늘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보험업계가 자본성증권 발행을 늘리는 것은 핵심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K-ICS·킥스)비율을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자본성증권 발행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자본의 질’이 저하된다고 우려를 표합니다.
지난해 8조7000억원 발행…급격한 금리 인하에 ‘발등에 불’
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업계가 발행한 자본성증권은 총 8조7000억원 규모입니다. 이는 전년에 발행한 3조2000억원보다 171.9% 늘어난 규모죠. 한화생명(1조9000억원), 현대해상(1조8000억원), 교보생명(1조3000억원) 등은 1년 사이에 1조원이 넘는 규모의 자본성증권을 발행했습니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자본성증권 발행을 늘리는 것은 건정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 때문입니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현재 내어줄 수 있는 ‘가용자본’을 내어줘야 하는 ‘요구자본’으로 나눈 값입니다. 쉽게 말해 보험사가 보험계약자 등에게 줘야 할 돈을 한 번에 지급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를 몇 퍼센트나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지급여력비율을 150%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합니다.
핵심은 2023년 새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서 함께 도입된 현행 지급여력비율 제도가 보험부채를 장부가치가 아닌 시장가치로 평가하도록 한 것입니다. 위험을 더욱 정교하게 산출해 잠재적 위험을 면밀하게 측정하고 대비하도록 한 것도 주요 변화 중 하나입니다.
금리가 내리면 보험부채를 현재가치로 변환할 때 사용하는 할인율도 함께 떨어집니다. 예컨대 1년 뒤 갚아야 할 돈이 100억원이고 현재 금리가 연 5%라면 지금 현금을 95억원가량 보유하고 있으면 됩니다. 95억원에 5% 금리가 쌓이면 100억원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금리가 연 3%로 낮아진다고 가정하면 현재 97억원이 필요하게 됩니다.
보험사들은 수십년에서 길게는 100년이 넘는 계약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 지급여력비율 제도에서는 금리가 조금만 내리더라도 요구자본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죠. 시장금리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작년부터 보험사들은 자본확충에 나서야 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금융당국이 무·저해지 보험에 대한 계리적 가정 관련 지침을 새로 내린 것도 이와 같은 상황을 부추겼습니다.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을 낙관적으로(높게) 가정했던 보험사들이 이를 보수적으로 바꾸면서 보험계약마진(CSM)과 지급여력비율이 동시에 내렸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다수 보험사가 당국 권고치인 150%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이때 떠오른 대안이 자본성증권입니다. 자본성증권은 주로 부채의 성격을 띠지만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자본을 늘려 지급여력비율 하락을 막으려다 보니 자본성증권 발행을 늘려야만 했던 것이죠.
자본의 질 악화하고 변동성 대비 어려워…금융당국, 자본규제 고도화 도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자본성증권을 통한 자본확충이 미봉책이라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27일 자본성증권과 관련해 “이자 부담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이슈가 있다”며 “후순위채로 조달하면 자본의 질이 악화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죠.
이 원장이 지적한 대로 자본성증권은 사실상 부채이므로 이자 부담이 상당합니다. 만기가 돌아왔을 때 이를 상환하기 위해 또 다른 자본성증권을 발행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때 시장상황이 좋지 않다면 기존보다 더 나쁜 조건에 발행하거나 발행에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롯데손해보험은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찍으려다가 대외여건 변화 등을 이유로 발행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금융당국이 지급여력비율을 비롯해 보험업권에 대한 자본규제를 고도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현재 상황을 크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자본성증권을 무리하게 찍어 인위적으로 숫자를 맞추는 상황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죠. 이를 통해 보험업권 자본의 질적 개선을 유도하고 규제 관련 부담을 완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도가 변화하면 가용자본 중 손실흡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본금, 이익잉여금 등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에 대한 관리가 강화될 전망입니다. 대신 기존 지급여력비율 지표에 대한 규제 수준은 130~140%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일부 완화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다만 자본성증권을 위주로 건전성 지표를 방어해 온 기업들은 당분간 기본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어 일부 반발도 예상됩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올해 상반기 중 개선안을 확정해 연내 관련 법령을 개정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