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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너머 고요…겸재 정선이 거닐었던 山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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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5-03-3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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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미술관서 대규모 기획전 '겸재 정선'

  • 울창한 숲속과 텅빈 아지랑이…그곳에 머문 '수태사'

  • 36세 정선 vs 72세 정선…노년의 '기세'

  • 색채의 대가…정선의 핑크, 무지개 그리고 해당화

겸재 정선_1부 전시장 전경
겸재 정선 1부 전시장 전경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고요히 머무르고 있는 사찰의 향기와 소리를. <수태사동구>(1738년). 겸재 정선(1676~1759)이 63세 때 그린 이 작품 속 사찰 ‘수태사’는 빽빽한 숲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깊은 숲속의 수태사를 두고, 문신 김창협은 “숲이 빽빽하고 아지랑이 더해, 절이 가려지고”라고 표현했다. 정선은 울창한 나무와 투명한 아지랑이만으로 자연과 하나가 된 수태사를 누구든 감각할 수 있도록 했다.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31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기획전 ‘겸재 정선’ 프레스 프리뷰에서 “진짜 경치가 가진 속뜻을 보여주는 게 정선의 진경산수화다”라고 설명했다.
 
진짜 경치의 속뜻…어머니 삼년상 치른 후 '완숙한 화풍'
수태사동구
관동명승첩의 수태사동구 [사진=윤주혜 기자]

18세기 한국 회화를 대표하는 겸재 정선. 1738년 가을, 당시 63세였던 정선은 친척 조카 최창억(1679~1748)을 위해 관동명승첩 11폭을 제작한다. 조 실장은 “1735년 어머니가 돌아가고 삼년상을 치른 후 처음 나온 작품이 관동명승첩”이라며 “이때부터 겸재는 추상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동명승첩의 ‘수태사동구’는 나무가 우거져서 절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기 뜻대로 붓을 운용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선은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작품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삼년상이 끝난 후 첫 작품인 ‘관동명승첩’ 11폭에 이전과 구분되는 완숙한 화풍을 담아냈다. 11폭은 천불암 등 동해안의 명승과 수태사동구, 정자연 등 한탄강의 모습을 진경산수화풍으로 그려냈다.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공동 개최하는 ‘겸재 정선’에서는 ‘관동명승첩’을 비롯해 총 165점(국보 2건, 보물 7건 57점, 부산시유형문화재 1건)을 만날 수 있다.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18개처의 기관과 개인의 소장품을 총망라했다. 겸재 정선을 다루는 사상 최대 규모 전시다.
 
금강전도
금강전도 [사진=호암미술관]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거닐며,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점차 추상화로 향하는 변화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금강전도>(18세기 중엽)는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모두 한눈에 들어오도록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린 작품이다. 1만2000개의 봉우리가 화면 가득 펼쳐져 있다. 조 실장은 “푸른색을 사용한 예는 정선 외는 없다. 개성적이다”라며 “과거 1773년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그때는 정선이 60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푸른색 토산과 암산이 조화를 이루는 등 노년기의 특징을 드러낸 점에 비춰 18세기 중엽, 정선이 70대나 80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금강내산
금강내산 [사진=호암미술관]
 
정선 vs 정선...핑크, 무지개, 해당화
특히 정선의 젊은 시절 작품과 노년의 작품을 비교할 수 있다. 신묘년풍악도첩의 금강내산첩도와 해악전신첩의 금강내산은 정선이 각각 36세, 72세 때 그린 작품이다. 정선은 금강산을 처음 여행했던 36세에 그렸던 그림(신묘년풍악도첩)들을 72세에 금강산을 다시 여행하며, 노년에 도달한 대가의 솜씨로 다시 그려냈다. 조 실장은 “신묘년풍악도첩은 금강산을 처음으로 작업하면서 격물을 디테일하게 담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72세 때는 선을 대충대충 그리면서도 기세 있게 그려내, 전체적 구도가 매우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정선의 핑크, 무지개, 해당화 등 색채 마법사로서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조 실장은 “그는 색채의 대가였다”며 “분홍색은 그 당시엔 정선 말고는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사문탈사>(1740~1741) 속 절집의 벽 전체는 분홍빛이다. 또한 <홍관미주도>(1740~1741)에는 영롱한 일곱 빛깔 무지개를 표현했다. 조선시대 유일 무지개라고 할 수 있다.
 
정선 독서여가도 사진삼성문화재단
독서여가도 [사진=호암미술관]

정선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독서여가도>(1740~1741)도 만날 수있다. 옥색 중치막을 입고 사방관을 쓴 선비가 사랑방 튓마루 위에서 청화백자 화분에 심은 붉은 해당화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쥘부채를 펴들고 있다. 책장 문에 장식된 그림과 쥘부채에 그려진 그림 모두 정선의 그림인 점에 비춰 그의 서재로 볼 수 있다. 조 실장은 “정선이 책을 읽다가 해당화를 바라보는 장면”이라며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책을 보는 사람’이라는 점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정선의 강한 문인의식을 엿볼 수 있는 <퇴우이선생진적첩> 등도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을 실천한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과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혜안이 있었기에 이뤄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귀중한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을 막고자 적극적으로 문화유산을 수집했고,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헌신했다.
 
전시는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4월 2일부터 6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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