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새로운 남북관계의 시작을 기원하며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비상계엄으로 지난 넉 달 동안 극도의 혼란을 겪은 우리 사회는 탄핵 인용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꿋꿋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안겨 주었다. 남북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무력도발을 유도해 비상계엄 정당성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짓이 얼마나 무모했으며, 현실화하지 않은 데 안도의 큰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외환(外患)위기를 부채질한 진상은 낱낱이 밝혀내 그 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대선 정국의 돌입과 함께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회 전반적인 개혁은 남북 관계에도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관계의 개선은 이념적 양극화로 치달은 우리 사회의 병적 증세를 완화·치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 즉 남북이 서로 교류와 협력을 활발하게 추진했을 때 남한 사회 내부의 이념적 갈등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얻은 과거의 경험으로 두 달 내 출범할 다음 정부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반쯤 지났을 무렵 북한은 그들이 설정했던 남북 관계를 전환했다.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2024.1.15)에서 김정은은 북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그 이유는 남한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명시하고 있는 점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를 북한 정권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노골화한 표시로 규정했다. 김정은은 북한 사회주의 헌법에는 그런 점을 반영한 조항이 없음을 들고 이에 상응하는 법률적 대책을 주문하면서 남한을 통일의 길을 갈 수 없는 대상, 남북한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즉 전쟁 중의 교전국으로 단정했다. 그러면서 ‘북방한계선’ 이북의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할 수 없으며, 남한이 북한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로 간주할 것임을 명백히 밝혔다. 이후 북한은 남한을 화해와 통일의 대상에서, 동족이라는 개념에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북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경의선 철도·도로의 단절,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 등 통일과 민족을 상징하는 유물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만다.
 
북한이 남한 헌법의 영토조항을 들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설정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압도적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남한이 언젠가 북한 체제를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북한이 남북 교류·협력에 소극적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교류·협력이 가져올 체제 위협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열어가야 할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남북 관계가 모색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상응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이는 남한이 ‘흡수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있음을 북한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남북한 교류·협력이 체제 붕괴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적대적 남북 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전환하려면 남북 사이에 교류·협력은 반드시 존재해야 할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교류·협력이 북한 체제 붕괴의 단초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게 하는 일이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남한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명시적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조치로 생각한다. 어느 한 나라의 영토가 국가 권력이 실질적으로 미치는 공간까지라는 국제법상의 원칙에서 볼 때 헌법 제3조는 비현실적인 면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 하나의 영토가 아닌 상태에서 하나로 보는 모순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헌법 제4조에 명시된 통일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제3조의 영토조항을 바꿀 여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남북이 각각 당당한 개별 국가로 명시된 상태에서 교류·협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바탕 위에서 우리는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을 지향하면 된다. 남북을 먼저 ‘통일과 같은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서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체제의 통일이 아닌, 남북한 주민이 이웃 국가 드나들듯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경제·사회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 ‘사실상의 통일’이다.
 
통일은 절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북한이 무너져 하루아침에 하나의 체제가 되는 경우,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이다. 북한을 일시에 껴안는 통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통일에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통일할 수 있는 탄탄한 바탕을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교류·협력은 그런 바탕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을 넓히는 것은 교류·협력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 이질 체제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체제 단일화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없앨 수 있는 방편 마련도 교류·협력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남한 헌법 제3조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법이다. 북한이 자신감을 가지고 남북 교류·협력에 임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들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이 추구하는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도 무력이나 흡수통일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독일 통일 전 서독은 기본법(Grundgesetz)의 적용 범위를 서독 지역으로 국한하면서도 독일 연방에 새로운 주가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규정했다(제23조). 동시에 통일헌법이 제정으로 기본법의 효력 상실도 규정(제146조)해 통일에 대비했다. 그러나 독일 정치권이 택한 것은 기본법 23조 방식의 통일이었다. 동서독 관계는 하나의 민족이면서도 두 국가라는 정책을 통해 동독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상호 내적 교류·협력의 진작과 지원의 방편으로 동독을 국제법상의 외국으로 보지 않았다.
 
남북한 사이의 교류·협력은 우리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돌파구로서도 기능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미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에 따른 통상 환경의 변화와 환율 폭등, 주가 하락 등은 수출 주도 한국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희망과 심리적 기대감이 필요하다. 이를 남북한의 교류·협력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인구감소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청사진 마련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경유한 북방으로의 진출이 필요하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가능성, 중국의 무비자 입국 정책과 예상되는 한한령 해제에 편승해야 한다. 북방 국가와의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남북한 사이의 교류·협력에서 시작하자. 다음 정부는 북한이 내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지혜와 상응하는 조치를 단행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 모두 새로운 남북 관계의 성공적인 시작을 기원하자.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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