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이즈 커밍(feat.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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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휘자가 있었다. 그는 연주 중 특정 악기의 소리가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바순 소리는 너무 작고, 트럼펫 소리는 지나치게 크며 타악기는 박자를 어지럽힌다고 여겼다. 그는 이들을 줄이고, 때로는 없앴다. 결과는 어땠을까. 연주는 점점 단조로워졌고, 협주의 조화는 무너졌다. 그가 없앤 것은 불협화음이 아니라, 음악의 본질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이 지휘자의 착각을 닮았다. 그는 무역적자를 ‘국부 유출’로 보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을 불협화음으로 여겼다. 처방은 단순하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글로벌 공급망에 장벽을 세우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공정성을 회복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이 접근은 미국 경제의 복잡한 구조를 간과하고 있다.

무역적자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다. 미국 경제는 글로벌 분업 구조 속에서 제조를 외주화하고, 기술과 서비스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상품 수지는 적자지만, 서비스와 투자 수익에서 상당한 흑자를 내고 있다. 이 구조를 외면한 채 관세만으로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것은, 하나의 악기 소리만 듣고 전체 오케스트라를 판단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아이폰을 보자. 조립은 중국에서 이뤄지지만, 설계·기술·브랜드는 대부분 미국에서 창출된다. 그럼에도 ‘중국산’이라는 이유로 관세를 매기면, 그 비용은 소비자와 기업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고, 가격 경쟁력은 약화될 수 있다. 게다가 부품 수급부터 최종 조립까지 얽혀 있는 공급망이 복잡하게 재편되면, 비용뿐 아니라 제품 출시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관세는 애플의 글로벌 전략을 제약하고, 미국 내 소비자 부담과 기업 실적 하락이라는 이중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는 단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 파트의 조화가 전체 가치를 만들어낸다. 무역적자라는 한 요소만 제거하려는 시도는, 이처럼 미국 경제의 고부가가치 산업까지 흔들리게 만들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성과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관세 정책이 가져올 진짜 위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율 관세는 단기적으로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을 우회하는 공급망을 구축하게 만든다. 이는 미국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가치 사슬을 약화시키고, 동맹국과 경쟁국 모두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나서게 만든다.

트럼프는 단순히 불협화음을 제거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또 이 행위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거 같다. 하지만 그가 제거하는 것은 미국 경제가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무역적자라는 하나의 수치를 고치려다, 오히려 전체 시스템의 균형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는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돌아가며, 단기적 관세 조치가 불러올 후폭풍은 오래가고, 깊을 수 있다.

트럼프의 오판에 협업과 상호의존을 기반으로 한 무역의 봄날은 저물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호주의라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세계는 점차 조화의 리듬을 잃고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겨울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진 않았지만, 그 서늘한 기운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따뜻했던 무역의 계절이 끝나가고 있다면, 머지않아 훨씬 더 추운 세계 경제의 겨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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