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집권 직후 경제 개혁에 과감한 칼을 댔다. 강성 노조 개혁과 공기업 민영화 등 고통을 수반하는 수술을 선택했다. 당시 지지율은 출렁였지만, 대처는 “달콤한 인기보다 고통스러운 수술이 필요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 선택은 ‘유럽의 병자’라 불리던 영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비슷한 갈림길에 섰다. 집권 초기는 정부가 구조 개혁을 시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국민의 기대는 아직 유효하고, 국회와 이해관계자들도 새 정부에 대한 관망 속에서 비교적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무엇보다 높은 지지율은 개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저항과 불만을 감내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다. 문제는 그 자산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투입하느냐다. 선심성 예산에 흩뿌려 단기적 인기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인가. 이 선택이 앞으로 5년 국정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 구조 개혁 과제는 부동산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가계 부채, 세대 간 자산 격차,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청년층의 사회 진입 지연 등 구조적 병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과거 정부들은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며 단기 처방에 그쳤고, 결과적으로 시장 신뢰는 더 흔들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집을 살 수 있다는 기대’와 ‘급등하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공존하는 정책이다. 민간 중심의 공급 확대, 예측 가능한 보유세·거래세 체계, 청년과 무주택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주거 사다리 마련이 핵심이다. 전월세 시장의 안정, 공급 시차를 감안한 중장기 계획 수립도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 조치는 기존 주택 보유자, 지방자치단체, 건설업계 등과의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힘은 오직 국정 초반에만 존재한다.
자본시장도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 단기적인 세제 혜택이나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시장의 근본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특히 공매도 제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 속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신의 상징이 되었다. 정보력과 자금력을 갖춘 기관과 외국계 자본이 주가 하락을 유도하고, 일부 대주주는 내부 정보를 활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을 움직인다는 의심이 팽배하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도 자체를 유지하더라도, 사전 공시 의무 강화, 대차거래의 실시간 공개, 불공정 거래에 대한 강력한 제재 등 실질적 공정성 강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더 나아가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 자본시장 감독체계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코스피 활성화는 결국 신뢰 회복에 달려 있다.
부동산과 자본시장은 한국 경제의 양대 자산 축이다. 이 두 분야를 건드리는 구조 개혁은 불가피하게 이해집단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동반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지율은 하락하고, 개혁을 추진할 동력은 약화된다. 결국 초반 지지율을 어디에 쓰느냐가 관건이다. 선심에 지지율을 쓴다면 구조는 남고 신뢰는 사라질 것이다. 반대로 이 시기를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미뤄온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수 있다. 마거릿 대처가 초반의 정치적 동력을 흔들림 없이 ‘수술’에 투입해 영국을 ‘유럽의 병자’에서 벗어나게 한 것처럼, 우리도 집권 초기의 지지율을 구조 개혁 동력으로 전환할 결단이 필요하다. 그 결단 없이는 경제의 근본적 문제들은 또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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