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미·중 치킨게임,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한국이 되자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트럼프 발 관세전쟁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미·중 간의 각축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양보와 타협을 상정하지 않고 극한 상황까지 밀어붙이는 치킨 게임(chicken game) 양상이다.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이 게임은 일방적 승자를 만들지 못한다. 서로 피해를 신경 쓰지 않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통례나 통설, 상식을 뒤엎기 때문에 상당한 후유증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서부터 자신이 당선되면 중국에 대한 60%의 고율관세 부과를 공언해 왔기 때문에 대중 압박은 충분히 예상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세에 집착한 트럼프 2기는 당초의 예측을 훨씬 초월해 전 세계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관세 부과 시행을 천명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의 의도대로 가지 않고 있어 일부 유예조치나 일부 품목에 대한 제외 조치 등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국제 경제 체제는 물론 전반적인 국제질서까지 동요하게 만든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의 주요 목표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미국의 과도한 재정 적자를 줄이고 제조업과 일자리 부활이라는 대전제하에 ‘관세’가 이들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이 미국에서 이익을 편취하고 있다면서 10%의 보편 관세(Universal Tariff)를 일률 부과했고, 중국에게는 10%를 추가 부과했다. 이때까지 중국에 부과된 관세만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의 펜타닐 통제 비협조에 대한 징벌 관세 20%와 기존의 정상적 상품 관세 20.8%를 더해 이미 60%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압박에 세계 각국이 공포증을 보이자 오히려 이를 역 이용해 4월 9일부터 전 세계 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차등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부과를 천명했다.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실제 매기는 관세만큼 똑같은 관세를 상대국에 부과하는 개념이지만 미국은 해당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한 무역적자액을 해당국에서 수입한 금액으로 나눈 비율을 해당 국가 대미 관세로 규정한 뒤 그 비율의 절반을 상호 관세로 부과했다. 여기에 비무역적 요소까지 임의로 산입해 수치를 산정함으로써 자의적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원래 상호관세는 무역의 균형을 맞추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명분 아래 부과되지만, 무역적자 금액에 비례해 상호관세를 매기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예가 없는 일방적인 조치로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전략의 한 방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미국 주식시장은 요동쳤고, 특히 미국 재정의 주요 공급원이며 수많은 미국 연금 생활자들의 버팀목인 10년 만기 국채시장이 흔들렸다. 이렇게 되면 국채 발행에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므로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목표인 재정 적자 해소는 더욱 난망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고 이를 통해 향후 미국을 다시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정책은 전략적 선택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최종적인 추구 목표가 좋더라도 기존의 체제의 변동에는 일정한 변화가 수반되며, 그 변화에는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선행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바로 미국의 많은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비싸진 수입품의 인상분을 우선 지출하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한 부정적인 부분이 먼저 나타났고, 이는 1년 반 후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개별 국과의 상호 협상 시간을 갖는다는 명분으로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발표했지만 중국만은 예외였다. 중국이 전혀 물러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는 무려 145%에 이르며, 중국이 미국에 부과한 관세는 125%에 이른다. 이는 사실상의 무역 중단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실제로 즉각적으로 동등한 규모의 보복관세 부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주요 지지기반인 미국 중서부 농민층을 겨냥한 농산물이나 에너지 수입 중단, 희토류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미국의 관세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했다며 공식적 제소했고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21세기에, 그것도 세계 전체 GDP의 40%를 넘게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경제 체 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트럼프식 좌충우돌은 일견 중국이 상대적으로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제조업 1위 국가로 전 세계 공급망의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강력한 내수 시장이 있다. 일부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은 세계 최첨단이다. 물론 그 많은 중국산 제품을 어디로 수출할 수 있을지 중국이 경제적으로 겪어야 할 어려움도 산적해 있다. 정치 체제의 속성으로 인한 상대적 안정성이 침체의 늪에 있는 실질적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중국은 오히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을 이용해 국제적 주도 지위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독재 정권이며, 약탈 경제 국가로 미래를 함께할 수 없으므로 중국을 도전자의 반열에서 완전하게 탈락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싱크 탱크들은 무역수지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면 미국이 요새화(要塞化)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중국은 바로 이점을 노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정책이 강화될수록 미국과 거리가 생기는 국가들이 나타날 것이며 이들을 적극 중국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곧 있을 시진핑 주석의 동남아 순방이나 7월 유럽연합(EU)과의 정상 회담도 같은 맥락이다.
미·중 간의 갈등 심화가 가져올 영향에서 자유로울 국가는 없지만,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중 간의 갈등은 우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지속되면서 글로벌 무역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통상 국가인 한국은 당장 경제 성장률 하락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표면적으로나마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됐지만, 6월 3일 새로운 리더십이 결정을 앞두고 국내 정치·경제는 첩첩산중이다. 일단 현 정부는 대미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내기 위한 유연한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미·중 관세전쟁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 수단의 일환이며 기술 패권과 글로벌 영향력 경쟁의 일환이다. 여기에 우리는 북한이라는 매우 호전적인 군사집단과 대치하고 있다. 당연히 한·미동맹은 더욱 기능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관세 등 경제적 요인으로 안보가 희생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의 조선업이나 반도체, 전기차나 배터리 분야 등에 대한 글로벌 산업 경쟁력 유지는 좋은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 당연히 중국의 접근을 무조건 거부할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있는 사실에 근거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이고 선별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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