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으로 유물 주변 흙을 걷어봐요. 점점 모습을 드러내죠? 유물은 아주 소중하게 다뤄야 해요. 장갑을 끼고 주변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 내봐요. 우리 친구가 한번 해볼까요?”
최근 찾은 경남 함안군 ‘영남권역 예담고’에는 어린이들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흙속에서 유물을 조심조심 꺼냈다. 유물 모습을 종이에 옮겨 그리는 등 아이들은 유물을 만끽하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고고학자들이 발굴조사를 할 때 사용하는 도구, ‘트라울’. 아이들은 트라울을 손에 쥔 채 진짜 고고학자가 된 듯 발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유물 크기를 재고, 세심히 관찰한 뒤 그림을 그렸다. 한 어린이는 발굴한 토기가 ‘물결 문양. 단단하다’고 유물카드에 또박또박 적었다.

예담고, 유물을 만끽하다
이날 아이들이 탐구한 유물들은 모형이 아닌 ‘진짜’ 유물이다. 국가유산청(국유청)은 이른바 ‘비귀속 유물’을 안정적으로 보관하고, 누구나 유물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예담고’ 문을 열었다. ‘비귀속 유물’은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떨어지거나 깨져서 완성도가 낮은 것들이다. 이로 인해 국·공립박물관에 전시되지 못한다. 그동안은 조사기관들이 연구 또는 교육 목적으로 비귀속 유물들을 따로 보관했다. 하지만 이들 기관 수장고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관리에 난항을 겪자 국유청이 나섰다. 
폐터널이 유물 종착지로···유리창 없는 '만남'
영남권역 예담고는 총 길이가 189m에 이른다. 한때는 철길이 지났던 곳이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폐터널로 남아 있었다. 이곳에는 대구, 부산, 울산 등 영남권역에서 출토된 발굴유물들이 보관된다. 소장유물을 활용한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이아영 한국문화유산협회 연구원은 “영남권역 예담고는 유물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전시실, 교육실을 비롯해 개방형 수장고와 폐쇄형 수장고까지 갖췄어요. 기존 예담고가 비귀속 유물들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기능만 있었다면 이곳은 출토 유물과 함께 상설전,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요.”
영남권역 예담고에는 유리창이 없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개방형 수장고 내 유물들을 만질 수 있다. 전문가들만 다뤘던 비귀속 유물에 대한 접근 문턱을 없앴다. 이 연구원은 “비귀속 유물 다수는 조각 난 게 많아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비귀속 유물들이 지닌 역사적인 정의나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폐쇄형 수장고에서는 유물이 어떻게 보관되고 관리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최대 8000여 박스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이다. 현재는 약 1700박스에 달하는 유물이 보관돼 있다. 이 연구원은 “학술자료는 유물관리시스템에 등록해서 면밀히 관리하고 매몰자료는 박스 단위로 분류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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