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주 선주민 화가 조니 와랑쿨라 쭈푸룰라(Johnny Warangkula Tjupurrula, 1925~2001)의 작품 '워터 드리밍 앳 칼리피니파'(Water Dreaming at Kalipinypa)는 2000년 7월, 48만6500호주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판매됐다. 1972년, 조니 와랑쿨라는 이 작품을 150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13만원에 팔았다. 작품 가치가 30년 만에 3000배 이상 폭등했지만, 작가에게 돌아간 돈은 없었다. 이는 ‘미술품 재판매 보상청구권’(Resale Right) 도입에 불을 지폈고, 호주 정부는 2010년 이 제도를 시행했다.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이하 추급권)은 미술품을 재판매할 때 오른 가격에 대한 이익을 작가 혹은 작가의 유족과 나누는 게 골자다. 현재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을 비롯해 호주 등이 시행 중이다. 최근에는 뉴질랜드가 합류했다.

우리나라는 오는 2027년 7월 26일부터 이 제도가 시행된다. 미술진흥법상 미술품의 재판매가가 500만원 이상일 때 추급권에 해당되고, 작가 사후 30년간 법정상속인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관건인 요율을 비롯해 재판매 보상금을 징수 및 분배할 업무를 수행할 기관과 수수료 수준 등 세부내용은 미정이다.
정부는 추급권을 시행할 경우 미술 작가들의 생계유지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미술 저작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연내 관련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후 제도의 구체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최근 “요율을 어느 선에서 정할지는 올해부터 준비할 것 같다”며 “2026년이나 2027년 초에 법령 개정 작업에 나서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갤러리, 옥션, 작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진흥법상의 보상금 징수, 분배 절차나 내용 등이 어느 정도 결정되면, 요율 등도 하위 법령으로 정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미술계 일각에서는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국화랑협회 관계자는 “작가의 권익을 위한 제도적 취지는 공감하나, 현재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 추급권의 실제 운영에서는 주요 작가들에게의 효과 편중, 시장 위축, 높은 행정비용 등 우려되는 사항이 많다”며 “해외사례도 유럽 시장 중심으로 운영사례가 대부분이며, 유럽 미술시장과 국내시장의 구조는 상이하다”고 말했다.

요율 관건…보상금 추정 규모 상이
미술진흥법을 기반으로 하는 추급권은 미술품의 소유권이 작가로부터 최초로 이전된 후 재판매되는 경우, 해당 매도인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율에 따라 금액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유럽과 호주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은 제도를 도입했으나, 활성화돼 있지 않다. 때문에 한국판 추급권은 유럽이나 호주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미래산업전략연구소가 수행한 ‘한국의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 규모 추정 조사’에 따르면 요율 적용 방법, 건당 상한가 등 세부사항에 따라 추정되는 보상금 규모가 천차만별이다. 유럽의 경우 0.25~4%의 변동요율을 적용하는 반면, 호주는 5% 고정요율을 적용한다. 또한 유럽과 호주 모두 작품의 최저 가격선이 있지만, 건당 상한가는 유럽만 적용 중이다.
미래산업전략연구소가 최근 10년간 국내 경매사와 해외 경매사에서 거래된 국내 작가 작품을 대상으로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결과, 미술시장이 활황기였던 2021년에는 39억~85억9000만원에 달하는 재판매보상금이 걷히는 결과가 나왔다. 글로벌 긴축 기조로 미술 시장이 위축된 2024년에는 14억~26억원 규모로 추정됐다.
정유나 미래산업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26일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5 미술 저작권 국제 컨퍼런스'에서 “시장 전체에서 재판매보상금 비중은 2% 미만으로, 우리나라 미술시장 규모에 비해서 크지 않다”며 “해외에 지급하는 규모는 대략 2~3% 정도다”라고 말했다.
미술계 일각 "추진 성급" 지적…"과도한 우려" 반박도
미술 시장 일각은 정부가 시행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이 거의 50%에 달하는 미국이 유럽연합(EU)의 도입 요구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하고는 추급권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든다. 앞서 옥션 업계는 미술시장진흥법 입법 과정에서 정부가 추급권 도입에 박차를 가하자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이 0.6%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의 도입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라며 관련 조항 삭제를 요청한 바 있다.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추급권 혜택은 두번 세번 손바뀜이 일어나야 가능한데, 일부 블루칩 작가 외에는 재판매가 매우 드물다"며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미술품 거래는 이익발생 시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추급권으로 5%를 저작권자에게 지불하면 투자수익은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며 “IMF 이후 시장에 진입한 이들 대부분이 미술품을 투자처로 생각한다. 허들이 많을수록 진입 장벽이 높아져 미술시장은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리마 셀히 DACS 정책 및 국제 업무 책임자는 “아트마켓에서는 ‘시장을 망칠 것’ 혹은 ‘해외로 거래가 이전될 것’이라는 등 반발이 컸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영국 미술 시장은 추급권 도입 후 확장세를 보였다고 반박했다. 영국은 옥션, 갤러리 등을 통해 재판매되는 작품 가운데 최소 1000파운드 이상일 때 추급권이 적용된다. 사인 간 판매, 개인이 박물관 등에 판매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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